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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28. 11:15

신화 다시 읽기 1

인류의 상상력 발전소, 마음을 열고 신화를 보라!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함으로써 '트로이의 목마'는 신화가 아니라 역사의 한 장면임을 입증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 그가 트로이를 향한 열정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책 한 권의 영향이 컸다. 신화 속 인물의 모험담이 가득했던 그 책은, 슐리만으로 하여금 현실 너머의 꿈을 꾸게 하고, 마침내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하게 했다. 신화는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 상상력이 신성장동력이 되는 시대, 상상력의 보고(寶庫)인 신화를 다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화는 그 옛날 인류의 사상과 감정을 전하는 메신저이자,
상상력의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다.
 

황당한 옛날이야기? 삶의 지혜를 담은 문화적 원형! 

신화는 원시 인류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삶의 지혜를 담은 신성한 이야기이다. 원시 인류는 신화를 상징이나 동화와 같은 형태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옛날이야기 같기도 하다. 특히 이성과 실천이 중시되던 시대에 신화는 쓸모없거나 심지어는 인간을 나태하게 하는 백일몽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아마 7080세대들은 그들의 청소년 시절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당시 만화방에 갈 때 얼마나 부모님의 눈치를 보아야만 했던가? 만화 보면 공부 못 한다고 꾸중을 들었지만 요즘은 만화로 공부까지 해결하려 할 정도로 인기이다. 영화 보러 가는 것은 더욱 위험스러웠다. 극장 자주 가면 깡패 된다는 경고를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영화는 어엿이 국민 교양으로서의 몫을 다하고 있다.
그때의 아이들은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른들은 옛날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옛날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부자 되는 지름길이다. 현대 문화산업에서 옛날이야기야말로 가장 중요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에는 상상력과 이미지 그리고 이야기를 억압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이 세 가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세 가지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한 것이 신화이다. 그래서 신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일어나고 있다.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네'를 모시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세계문화유산 제1호이기 이전에, 그리스 신화와 문명을 상징하는 심벌이다.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돌아가야 할 맨 처음 자리, 신화

그렇다면 상상력과 이미지 그리고 이야기의 3요소를 지니고 있는 신화가 현대사회에 대해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첫째로, 신화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게 해 준다. 극도로 과학이 발달한 이즈음 우리는 바야흐로 정체성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복제인간의 탄생이 머지않았다고도 하고 인공지능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사이보그나 로봇이 활약하게 될 날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도 한다. 이들 복제인간ㆍ사이보그ㆍ로봇 등과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신화는 원시 인류가 벌거숭이로 자연 앞에 직면했을 때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확인하고 그 고유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어딘가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으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찾아가게 되는데, 정체성 위기의 이 시점에서 신화에 대한 열띤 관심은 이와 같은 행동과 다름없다.

둘째로, 신화는 민족이나 집단의 유대와 결속을 도모하게 해 준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원시시대에 한 집단이 공유했던 생각을 담은 이야기이다. 원시 인류는 신화를 통해 사상과 감정을 공유하고 일체감을 형성했던 것이다. 신화의 이러한 기능은 오늘에도 살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개천절이 되면 불현듯 단군신화를 떠올리며 우리 모두 단군 할아버지와 곰 할머니의 자손으로 동일한 배달겨레라는 일체감에 젖는다. 물론 한국이 점차 다문화ㆍ다민족 사회로 접어들면 더 높은 차원에서의 결속을 위해 이러한 단일민족의 신화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신화는 자연에 대한 친화적 감수성을 회복시켜 준다. 신화시대에 인류는 자연의 품속에서 조화롭게 살았다. 자연은 인류 생존의 모태이자 따라야 할 법도였다. 신화 속에는 인류와 자연의 공존 관계가 잘 표현되어 있다. 가령 반인반수의 괴물은 오늘날 징그럽게 여겨지지만 원시 인류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동물과 인간이 한몸 속에 있는 것으로 나타냈던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파괴하였다. 그 결과 이제는 자연의 반격으로 환경 위기에 직면하면서 인류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자 다시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 즉 생태주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신화는 메마른 우리의 기계적 심성에 자연에 대한 따뜻한 감수성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신화 속에서 우리는 자연 앞에 직면한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 옛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자연과 공존했던 시대의 따뜻한 감수성을 호흡할 수 있다.

 

현대 문명은 신화 속 '창조적 상상력'이 실현된 것

 위에서 현대사회에 대한 신화의 중요한 기능 세 가지를 들었지만 사실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하여 신화가 행사해 온 가장 큰 기능은 바로 창조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담긴 무한한 상상력은 지금까지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유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타인의 사랑을 거절하다가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스 신화에서 비롯한 나르시시즘 등은 인류 문명의 본질을 해석하는 너무나도 유명한 가설들이다.

나르시시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카루스 패러독스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 중에는 신화에서 파생된 것이 많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이카루스는 미노스 대왕의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양초를 녹여 새 깃털을 이어 붙인 날개를 몸에 단다. 그는 미궁을 날아 탈출했으나 자만한 나머지 태양 가까이 올라갔다가 양초가 녹아 추락하고 만다. 여기에서 ‘이카루스 패러독스'라는 교훈이 생겨났다. 즉, 적당하면 이득
이 되지만 과도하면 해가 되는 이해의 양면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신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 준다.

신화적 상상력은 사상ㆍ문학ㆍ예술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저명한 과학 잡지는 요즘 만들어진 첨단 과학 기기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수십 년 전에 유행했던 공상과학소설에서 이미 첫선을 보인 것들이라는 통계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신화적 상상력이 현대 과학기술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신화적 상상력을 활용한 예는 주위에서 흔히 발견된다. 최근 중국이 달을 향해 발사한 우주선의 이름은 ‘창어'였다. ‘창어'는 우리 발음으로는 ‘항아(姮娥)'이고 중국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여신의 이름이다. 원래 항아는 활 잘 쏘는 영웅 예(羿)의 아내였는데 남편이 얻어 온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로 달아나서 그곳의 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에서 이미 그러한 선례가 있었지만 그 외에도 신화에서 이름을 취한 발명품ㆍ상품 등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미국의 지대공 미사일 중에 ‘허큘리스'라는 것이 있다. 허큘리스는 그리스 신화의 힘센 영웅 헤라클레스의 미국식 발음이다. 아마 이 이름처럼 그 미사일의 강력한 파워를 표현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중국이 지난해 발사한 달 탐사선 '창어'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이다. 신화적 상상력이 현대 기술과 어우러지고 있는 현상들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화는 많은 기업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신화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는 원형과도 같은 것이어서 신화적 명명은 친근하고 쉽게 대상의 속성을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미화하는 효과까지 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이름을 통해 자신을 널리 알리려는 광고야말로 거의 신화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인간의 욕망을 합리적ㆍ기술적으로 추구하는 대표적 조직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추구하는 욕망이 얼마만큼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행위가 공동체의 이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가 기업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편적 욕망의 조화로운 달성을 추구하는 신화의 지혜는 기업의 바람직한 발전에 대해 많은 시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글

정재서 /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08. 7. 28. 11:13

신화 다시 읽기 2

우리도 영웅의 길로 갈 수 있다!

신화를 읽다 보면 자주 영웅들을 만난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비범한 능력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신처럼 완벽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들 보통사람처럼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는가 하면, 곳곳에 도사린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종종 고난에 빠진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들이 겪는 현실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니 영웅을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들 마음속을 잘 다스리면 우리도 조금은 영웅의 길에 가까이 갈 수 있으리니…. 


영웅,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결함도 많다

신화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가령 창조신화는 태초에 이 세계와 인류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영웅신화는 영웅이 모험과 투쟁 끝에 보물을 얻거나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이며, 자연신화는 태양ㆍ달ㆍ별 등의 천체와 비ㆍ바람ㆍ우레 등의 기상 현상을 신격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창조신화와 자연신화의 주역은 초월적인 신들로서 완전히 인간을 뛰어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지만, 영웅신화의 주역은 말 그대로 영웅으로서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결함도 있는 인간이다. 바로 이 점이 영웅신화의 매력이다.

영웅은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결함이 있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신적인 경지에 까지 이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집을 나서서 악당과 싸우고 괴물을 퇴치하여 나중에 공을 이루고 돌아오는 영웅의 행로는, 사회에 나가 험한 세파에 시달리면서 성장해 나가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근본적으로 닮아 있다.

우리가 영웅신화를 읽거나 들을 때 깊이 공감하고 재미있어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전을 던지면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속설로 유명한 로마 트레비 분수.
신화 속 주인공들에게서 신격보다는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헤라클레스, 신과 운명의 횡포에 도전하다

동서양에는 수많은 영웅신화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영웅신화의 예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서양의 영웅신화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헤라클레스 신화이다. 최고신 제우스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
 는 무적의 힘을 지닌 영웅으로 유명하다.

그는 갓난아기 적에 독사를 잡아 죽였고 성장해서는 사자를 잡아 그 가죽을 머리에 쓰고 다녔다. 그러나 제우스의 정처(正妻) 헤라의 증오에 의해 광기가 발작하여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속죄를 위해 미케네의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제시한 12가지 난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12가지 난제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히드라와 같은 괴물을 죽이는 것, 금뿔이 달린 숫사슴이나 식인 암말 같은 동물을 생포해 오는 것, 여왕의 허리띠나 황금사과와 같은 보물을 가져오는 것, 지옥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를 끌고 오는 것 등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일들이었다.

제우스와 인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 서양신화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을 죽이는 등의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 모든 일들을 헤라클레스는 군말 없이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모험을 겪는다.

가령 황금사과를 얻으러 코카서스를 지나가게 될 때 인류에게 불을 갖다 준 죄로 형벌을 받고 있던 프로메테우스를 풀어 주고, 식인 암말을 데리러 가는 도중에 자신을 환대해 준 아드메토스 왕을 위해 죽음의 신과 씨름하여 이미 죽은 왕비를 무덤에서 구해 오기도 한다.

이후 그는 데이아니라라는 여자와 재혼하게 되는데 그녀는 헤라클레스가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마인(馬人) 켄타우로스의 피를 바른 옷을 그에게 입혔다.

예전에 켄타우로스가 데이아니라를 희롱하다가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가 죽어 가면서 데이아니라에게 자신의 피가 남편이 한눈팔지 못하게 하는 사랑의 묘약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사실상 켄타우로스의 피는 맹독이어서 헤라클레스는 결국 중독되어 죽고 만다. 그러나 죽어서 하늘로 올라간 헤라클레스는 헤라와 화해하고 그녀의 딸 헤베와 결혼하여 올림푸스의 신이 된다.

헤라클레스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겁없이 도전한 영웅이었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신과 운명의 횡포에 도전하고 싶은 그리스인들의 욕망을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라의 문제를 해결한 영웅 예(羿), 장수(長壽)를 꿈꾸다

동양의 영웅신화로서 익히 알려진 것은 예(?) 신화이다. 예는 활 잘 쏘는 용사였다. 성군으로 유명한 요(堯) 임금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하늘에 해가 열 개나 동시에 떴다. 가뭄이 들어 곡식이 타 죽고 백 성들이 못 살겠다고 난리가 났는데 용사 예가 나섰다. 그는 열 개의 태양을 향하여 활을 쏘았고 그중 아홉 개를 떨어뜨렸다. 이제 태양들로 인한 소동은 진정되었다.

그러나 가뭄을 틈타 여러 괴물들이 뛰쳐나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었다. 예는 다시 모험 길에 나서 코끼리도 삼킨다는 큰 구렁이라든가, 끌 같은 이빨을 지닌 괴물, 태풍을 일으키는 큰 새, 난폭한 멧돼지 등을 죽이거나 생포하였다.

열 개의 태양을 향해 활을 쏘는 예.
이미 명중되어 떨어진 태양들이 죽은 까마귀로 변해 예의 발치에 흩어져 있다.
(사진 출처 : <천문도(天問圖>)
 
 
지상의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수습한 후 예는 불사약을 얻으러 곤륜산(崑崙山)의 여신 서왕모(西王母)를 찾아갔다.
서왕모는 예의 공적을 치하한 후 불사약을 흔쾌히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의 아내 항아(姮娥)에게서 일어났다. 그녀는 남편 예가 사냥 나간 사이에 불사약을 혼자 다 먹어 버렸던 것이다. 항아는 불사약을 훔쳐 먹고 하늘로 올라갔지만 벌을 받아 두꺼비로 변하여 달에 몸을 숨겼다.

 항아가 두꺼비로 변하는 모습을 표현한 한(漢)대의 화상석.

예는 절망하였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제자들을 모아 활쏘기를 가르쳤다. 제자 중에는 봉몽(逢蒙)이라는 제법 활을 잘 쏘는 자가 있었는데 스승 예를 죽이고 일인자가 되려는 흉악한 마음을 품었다.

어느 날 예가 사냥 갔다 돌아올 때 봉몽은 길목에 숨었다가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스승 예를 때려죽이고야 말았다.

예가 비참하게 죽자 백성들은 그의 공적을 기려 그를 귀신의 우두머리 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귀신의 우두머리인 예가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맞아 죽었기 때문에 모든 귀신들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 그래서 지금도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놓지 않는다.


영웅의 행로는 우리 내면의 성장과정이다

헤라클레스 신화와 예 신화를 중심으로 영웅신화의 패턴을 생각해 보면 영웅은 모두 집을 떠나 모험을 하고 돌아오는 출발-모험-귀환의 구조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실상 우리네 삶의 과정과 다름없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사회 속에서의 실제적인 삶도 있지만 내면의 정신적인 삶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의 모험은 땅 위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내면의 성장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웅이 사악한 괴물을 처치하거나 요마와 투쟁하는 일은 우리가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마음속의 과도한 욕망, 부적절한 생각 등을 극복하려 애쓰는 일에 비유될 수 있다. 영웅이 모험 끝에 보물을 얻거나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는 우리가 미성숙한 마음을 다스려 온전한 정신적 경지에 도달한 것의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헤라클레스 신화와 예 신화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얻어진다.

첫째, 영웅은 항상 사회와 대중 속에서 성장한다. 그는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고 기꺼이 위험을 무릅쓴다. 바로 이러한 정신 때문에 영웅은 당대는 물론 후세에까지 길이 추앙된다.

둘째, 두 영웅의 말로가 비참했듯이 대부분의 영웅은 그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신적인 지위에까지 올랐다가 비극을 맞는다. 그 이유는 분수를 모르는 교만 혹은 그로 인한 방심 때문이다. 예컨대 아킬레우스는 무패의 용사였으나 생각지도 않게 아킬레우스 건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되고, 아가멤논은 트로이를 정벌했으나 아내의 정부에게 죽임을 당한다.

셋째, 대부분의 영웅신화에서 여성은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여성은 영웅을 망치거나 영웅에 의해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존재로 간주된다. 이것은 여성을 폄하하는 가부장적 의식이 영웅신화에 많이 침투되어서 그러하다. 영웅이야말로 가부장의 위대한 화신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우리는 영웅을 갈망한다. 특히 어지러운 세상, 힘든 때일수록 영웅의 출현을 바라게 되지만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거짓 영웅은 많아도 진정 공동체의 이상을 위해 헌신하는 참된 영웅은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겸허하고 차별 없는, 공평무사한 마음을 지닌 영웅임에랴.

그러나 영웅은 먼 데 가서 찾을 필요가 없다. 영웅의 길은 우리 내면의 길이기도 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신화시대의 영웅은 한 사람으로 표현되었을지 모르지만 이 시대의 영웅은 우리 모두이다. 우리 각자가 마음속 영웅의 길을 따라 내면을 도야할 때 그것은 개인을 바꿀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스스로 지닌 영웅 본색을 발휘할진저!


- 글

정재서 / 이화여자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2008. 7. 28. 11:11

신화 다시 읽기 3

본래 신화의 주인공은 여신이었다? 신화 속 여신의 모습에서 진정한 여성리더의 모습을 발견하라.

신화에 등장하는 것은 남신만이 아니다. 주인공은 오히려 남신이 아니라 여신이었을 것이라고 신화학자들은 말한다. 신화 속에서 남신과 여신의 역할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남신들이 전쟁이나 살육 같은 파괴적인 일을 수행하는 데 비해, 여신들은 생산을 담당하고 아픈 곳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신의 모습을 오늘날 많은 여성 리더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당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 그들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신, 잃어버린 여성의 자존심과 능력
 

신들의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대부분 남신들이다.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최고신이 제우스이고 중국 신화에서의 가장 큰 신이 황제(黃帝)인 것처럼. 그러나 신화학자들은 본래 신화에서의 주인공은 여신이었을 것이라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류 사회의 최초 형태는 모계사회였고 여성이 중심이었다. 모계사회는 씨족의 큰 할머니를 우두머리로 삼고 여성 씨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였다. 이 시절에 섬겼던 최고의 신은 당연히 여신이었을 것이다.

둘째, 인류 초창기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력이었다. 특히 농업 생산력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관건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생식 숭배가 성행하여 여성의 생식능력, 땅의 생산능력 등이 숭배되었고 이에 따라 땅과 여성의 생식ㆍ생산능력을 동일시한 땅의 여신, 즉 대지모신(大地母神)이 신앙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에서 초기 원시시대에 주도권을 쥐었던 신들은 여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고의 지위를 누렸던 여신들이 남신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 즉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로 인류 사회가 변천하면서부터이다. 이때 여신들은 과거의 독립적인 위치에서 남신들에게 종속된 위치로 격하된다.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헤라ㆍ아프로디테 등은 원래 제우스와는 별개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여신들이었으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남신 중심으로 다시 편성되면서 각각 최고신 제우스의 아내 혹은 딸로 변신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여신은 남신에게 종속되어 있다. 이 천장화를 봐도
여신은 남신 제우스의 사랑의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중국 신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뚜렷하다. 가령 여와(女?)는 세상을 창조한 고고한 지위의 여신이었으나 나중에 남신 복희(伏犧)의 누이동생으로 변모하며, 서왕모(西王母) 역시 곤륜산(崑崙山)의 고유한 여신이었으나 후일 동왕공(東王公)이라는 남신의 아내로 신분이 바뀐다.

오늘날 여성학에서는 이러한 여신 지위의 변화에 주목한다. 여신을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존재라고 가정하면, 신화 속 여신은 가부장제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여성 본디의 완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어쩌면 우리는 신화 속의 여신으로부터 잃어버린 여성의 자존심과 능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동양의 여신,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여신을 말하라 하면 흔히 헤라라든가 아프로디테(비너스) 등 서양 여신을 먼저 머리에 떠올릴 정도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에게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서양 여신들처럼 귀에 익숙한 여신들이 있었다. 한 세기 사이에 우리는 자신의 신화를 거의 잊고 만 것이다.

헤라와 아프로디테만큼이나 유명하고 인기 있었던 동양의 여신들에 대해 알아보자. 그녀들은 창조와 생육의 여신 여와와 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이다.

인간을 빚고 결혼제도를 만든 창조의 여신, 여와(女)

여와는 태초부터 있었던 위대한 여신이었다. 아득한 옛날 여와는 지상에 초목과 동물만 있는 것을 보고 인간을 만들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진흙으로 정성스레 사람을 빚었다. 그랬더니 그것들이 저절로 움직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지상에 사람이 가득 차자 여와는 사람 빚기를 멈췄다. 그러나 만들어 놓은 진흙 인간이 죽어 버리면 그 다음이 문제였다. 여와는 인류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남녀가 결혼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중매의 여신이 되었다.  

 사람과 짐승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던 어느 날 지구에 큰 변동이 왔다.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려 불덩어리가 쏟아져 내리고, 땅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여와가 기껏 만들어 놓은 인간들은 살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자비심 많은 여와는 오색의 돌을 찾아 그것들을 잘 다듬어 하늘로 가지고 올라가 뚫어진 곳을 기웠다.

다음에 여와는 거대한 자라 한 마리를 잡아 네 개의 발을 잘랐다. 자라의 넓고 큰 몸을 지탱해 온 그 발들은 튼튼해서 무거운 것을 괴기에 좋았다. 여와는 네 개의 자라 발을 땅의 네 귀퉁이에 세워 대지를 안정시켰다. 이제 사람들은 불덩어리 세례를 받지도 않고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지도 않게 되었다.

여신 여와가 오색의 돌을 다듬고 있다. 구멍 뚫린 하늘을 막기 위해서였다. 여와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을 위해 끝까지 헌신했다.

 이렇게 여신 여와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을 위하여 끝까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시 평화롭게 사는 것을 보고 여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불사약을 지닌 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西王母)

 서왕모는 여와보다 좀 늦게 출현한 여신이다. 서왕모는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곤륜산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마귀할멈 같은 무서운 생김새에다 전염병과 형벌 등을 맡아보는 살벌한 여신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불사약을 지닌 아름다운 생명의 여신으로 신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그것은 죽음과 관련된 여신이면 생명도 주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서왕모는 요지(瑤池)라는 호숫가에 궁궐을 짓고 살았고 반도원(蟠桃園)이라는 복숭아나무 밭을 가지고 있었다. 반도원의 복숭아는 한 개만 먹으면 1만 8,000년까지 살 수 있다고 했다. 언젠가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몰래 들어와 몇 개를 훔쳐 갔는데 그는 아주 오래 살아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말을 남겼다.

곤륜산에 하강하는 서왕모. 처음에는 전염병과 형벌 등을 맡아보는 여신이었지만, 나중에는 불사약을 지닌 생명의 여신으로 변모한다.

임금이든 영웅호걸이든, 많은 사람들은 서왕모가 불사약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만나 보고 싶어했다. 주(周) 나라의 목왕(穆王)은 서쪽으로 여행을 한 끝에 마침내 곤륜산에 도달하여 서왕모를 만났고 큰 환대를 받았다. 둘은 사랑에 빠져서 주목왕은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잊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랑캐가 국경을 침범했다는 급보를 접하고 주목왕은 서왕모와 애끊는 이별을 하였다. 주목왕은 돌아온다고 약속하였지만 결국 둘은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이후에도 서왕모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인기 있는 여신이었다. 허난설헌(許蘭雪軒) 같은 여류시인은 특히 서왕모를 좋아해서 그녀에 관한 주옥 같은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여성은 의존적ㆍ종속적이 아니라 독립적ㆍ창조적 존재

동양의 두 여신이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 온 것은 이들의 속성에 변하지 않는 의미와 가치가 있어서일 것이다.

여와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의 창조와 치유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신화에서 남신이 전쟁ㆍ살육과 같은 파괴적인 일을 수행한다면 여신은 생식ㆍ생산과 같은 창조적인 일과 더불어 파괴된 것을 치유ㆍ보완하는 일을 담당한다.

여와는 인류를 창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지속되도록 결혼제도를 만들고 깨어진 자연을 재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그녀 개인의 독자적인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와 신화로부터 여성이 본래는 의존적ㆍ종속적이 아니라 독립적ㆍ창조적 존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와 신화가 여성의 사회활동에서의 주체적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면 서왕모 신화는 내면적 영역에서의 깊은 잠재력을 보여 준다. 서왕모가 불사약을 지녔다는 사실은 그녀가 생명의 원천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서왕모는 모든 사람이 찾아가서 다시 힘을 얻어 가지고 돌아오는 생명의 샘과 같은 존재이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태어난 자궁 혹은 고향 같은 곳으로 돌아가 쉬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데 이것을 모태회귀(母胎回歸) 본능이라고 한다. 여성에게는 독립적ㆍ창조적 능력과 더불어 마치 자연과도 같이 만물을 품에 안고 편안히 휴식을 취하게 해 주는 포용의 힘이 있다. 서왕모는 천주교에서의 성모 마리아와 불교에서의 관음보살처럼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여신이었던 것이다.

여와와 서왕모 신화가 보여 주는 여성의 원초적인 모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재현될 필요가 있다. 항상 창조적인 자세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그러면서도 따뜻한 자애로 모든 것을 감싸 안는 포용력을 지닌 여성 리더라면 현대에 새롭게 태어난 여신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


- 정재서 / 이화여자대학교 중문학과 교수

2008. 7. 28. 11:08

신화 다시 읽기 4

누가 문화 경쟁력의 길을 묻거든 ‘신화’를 읽게 하라!

아이들이 읽는 책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최소한의 교양을 갖추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의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존경받는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삶의 역할모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위인전, 아름다운 심성과 사회성을 함양하는 데 좋은 동화, 상상력과 모험심을 기를 수 있는 판타지소설…. 그렇다면 신화는? 만화로 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이들 사이의 스테디셀러가 아닌가.

유럽을 여행할 때 마주치는 건물의 장식이나 그림의 상당수가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 중에도 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게임ㆍ애니메이션ㆍ소설ㆍ연극 등의 문화산업도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다. 이제 신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 짐작되시는가. 


신화는 어떻게 문화의 원천이 되었는가

심리학자 칼 융(Carl G. Jung)은 원시 인류가 경험했던 태초의 사건은 무의식 속에 원형으로 각인되고 다시 그 원형들이 모여 집단무의식을 이룩하는데 이 집단무의식이 신화의 주요 내용이라고 하였다. 원시 인류의 욕망과 꿈이 담긴 신화 즉 집단무의식은,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매 시기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날 뿐 그 본질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보면 신화는 문화의 원천이므로 우리가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면 근본적으로 신화를 꼭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서양문화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서양신화의 대표격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동양문화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대륙의 신화인 중국 신화에 대한 조예가 있어야 한다.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도출된 인류의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가설들은 오늘날의 서양문화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못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신화에서 유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제 잘난 맛에 여인들의 구애를 거절하다가 벌을 받아 자기애에 빠져 꽃으로 변신한 나르키소스의 신화에서 나온 나르시시즘 등은 잘 알려진 가설들로서 오늘날에도 문학ㆍ예술 등의 문화현상을 해석하는 데 더없이 긴요하다.

 

이제 신화를 통해 후대의 철학ㆍ사상ㆍ문학 등을 읽어 봄으로써 신화의 인류 문화에 대한 근원적 지위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동서양의 세계관이 다른 게 신화 때문이라고?

하늘ㆍ땅 등 세계의 창조, 인간의 탄생 등에 대한 이야기인 창조신화에는 인류의 근본적인 사유가 많이 담겨 있어서 후세의 철학과 문학 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태초에 지구가 혼돈 상태에 있었다는 신화는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가령 중국 신화에서는 형체 없이 어둑어둑했다고 하고, 제주도 무가에서는 하늘과 땅이 뒤섞여 사방이 캄캄했다고 하며, <성경>에서는 혼돈과 어둠이 태초의 세계를 지배하였다고 말한다. 다시 중국 신화에서는 혼돈 속에 밝은 기운과 어두운 기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다가 이것이 나중에 구분되면서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중국 신화의 이러한 내용은 나중에 동양철학의 유명한 우주론인 태극(太極) 이론으로 발전한다. 태극은 우주의 근본을 설명하는 도상인데 빨강과 파랑 부분은 혼돈 속의 두 가지 기운, 즉 양기와 음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창조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신화로는 '시체화생설(屍體化生說)'이 있다. 거인이 죽고 그 시체가 분해되어 산ㆍ강ㆍ흙ㆍ초목ㆍ금석 등으로 변했다는 이 신화 역시 동서양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중국 신화에서는 거인 반고(盤古)가 혼자 살다 죽은 후 절로 몸이 세계로 변화되었다고 하고, 게르만 신화에서는 큰 신 오딘이 거인 이미르를 죽여 그 몸을 잘라 세계를 만들었다고 하며, 바빌론 신화에서는 마르둑 신이 거대한 여신 티아마트를 싸움 끝에 죽인 후 토막을 쳐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한다.

동서양의 이 거인창조신화들은 대체로 내용이 비슷한 것 같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차이가 있고 이 차이는 동서양 세계관ㆍ문화의 차이를 반영한다.

첫째, 동양의 거인 반고는 자연사임에 반하여 서양의 거인들은 피살된다. 이것은 동양에서의 자연론적인 사고와 서양에서의 변증법적인 사고를 반영한다. 사물은 자연의 도리에 따라 저절로 변화한다는 생각과 외부의 충격이 있어야 그 반응으로 발전한다는 생각, 즉 동서양 세계관의 차이를 신화는 일찌감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동양의 거인 반고는 죽은 후 몸이 그대로 통째인 상태에서 각각의 세계 요소로 변화하지만, 서양의 거인들은 모두 토막이 난 상태에서 변화한다. 이것은 동양의 전일적ㆍ총체적 사고와, 서양의 분석적 사고의 차이를 반영한다.


전설로, 소설로, 신화의 모티프는 끊임없이 재현된다

인류 재탄생의 시조가 된 중국의 복희(伏犧) 여와(女?) 남매의 결혼 신화가 후대의 전설과 문학에 어떻게 원형적으로 작용했는가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잘 알려져 있듯이 복희와 여와 남매는 대홍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자 극적으로 살아 남아 나중에 결혼하여 인류의 대를 잇게 된다.

이 신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홍수와 근친상간의 모티프이다. 물은 생식ㆍ생명을 상징하는데 홍수는 물의 과잉상태이다. 이 과잉상태는 생식능력인 성의 과잉상태, 즉 근친상간과 상관된다.

조선시대에 충주 지방에서 유행한 ‘달래강 전설'의 내용은 이렇다. 부모 없이 고아가 된 두 남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여름날 밭으로 가다가 소나기를 만난다. 소나기를 맞아 옷이 흠뻑 젖어 몸의 곡선이 드러난 동생을 뒤에서 보고 오빠는 성적 욕망을 느끼게 된다. 말도 안 될 일이라고 자책감에 시달리던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전설이다.

다시 황순원의 국민소설 <소나기>를 보자. 잘 알다시피 마치 오누이 같은 두 소년 소녀가 개울가에서 만나 호감을 느낀다. 함께 놀다가 소나기를 만난 후 스킨십(?)이 이루어질 정도로 친해졌는데 소녀가 그만 병에 걸려 죽고 만다는 내용이다. ‘달래강 전설'과 <소나기> 모두에서 물의 과잉과 성적 과잉 즉 물과 에로티즘의 신화적 모티프가 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 신화에 있다

신화는 단순히 문화의 원형에 그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내용의 상상력으로 변형되어 현대 문화산업에서 적극적인 기능을 한다. 오늘날 게임ㆍ애니메이션ㆍ만화ㆍ영화 등 이른바 문화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선진국형 산업으로서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유망한 분야로서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의 수입이 당시 1년 동안 한국에서 자동차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과 맞먹었다는 속설은 문화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웅변하는 비유로 자주 회자된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문화산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이 신화를 비롯한 옛날이야기이다.

현재 성공적으로 문화산업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들이 어떻게 신화 자원을 활용하고 있는지 당장 확인할 수 있다. 판타지영화 대작 '반지의 제왕'은 옥스포드 대학의 고전학 교수 톨킨이 지은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작품은 게르만 신화에 근거한 것이다.

 

실의한 이혼녀를 단숨에 세계적 거부로 만들어 준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은 불문학 전공자로서 서양의 중세 마법이야기를 각색해서 소설을 썼는데 소설뿐만 아니라 판타지영화로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밖에도 게임 분야에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주로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선진국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의 문화산업은 자국의 전통 이야기인 요괴담을 활용하여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부동의 최고 지위를 누리고 있다. 수년 전에 출시된 애니메이션 대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바로 옛날부터 내려오는 요괴담과 요괴 그림을 소재화하여 성공한 케이스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소재가 된 요괴 그림.   

이 모든 사례들을 종합할 때 이제 우리는 신화가 황당하고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라는 인식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화는 인류의 본질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자 문화의 원천이기도 하면서, 현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도 있는 소중한 자원인 것이다.

- 정재서 / 이화여자대학교 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