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에게 묻다'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5.05 기업환경의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 넷
  2. 2009.05.05 경제위기, 세계 공존의 도화선으로 삼을 수 있을까 - 셋
  3. 2009.05.05 지금 위기에서 자유로운(immune) 나라는 없다 - 둘
  4. 2009.05.05 경제회복? “2010년 경에야 기대할 수 있을 것 - 하나
2009. 5. 5. 16:54

기업환경의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 넷

[석학에게 묻다] ④기업환경의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경제위기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고 있다. 생존하기 위한 무한경쟁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겠다는 기업들의 의지가 그만큼 강력한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세계적 기업뿐 아니라 중소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구글 등 글로벌 기업, 광대역 인프라 사업에 관심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현재 부수적인 사업분야는 물론 주력 사업까지 변화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세계 1위의 인터넷 검색 기업 구글도 예외가 아니다. 구글은 경제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구글은 우선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온라인 광고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험은 동시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불황에도 모든 기업은 물건을 팔아야 하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광고이다. 따라서 광고주 요구에 맞춘 온라인 광고는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내 대기업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경기회복의 핵심 프로젝트로 내세우고 있는 정보기술(IT) 뉴딜이 기업의 신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미국의 경우 여전히 수천만 명이 초고속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광대역 인프라 관련 사업에 투자

 


무한한 가능성, 신재생에너지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신재생에너지가 새로운 기업환경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은 신재생에너지에도 많은 투자를 해 왔는데, 슈미츠 CEO는 에너지 인프라는 경제회복과 성장을 자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기술, 전기자동차, 지능형 전력공급 시스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기후변화를 막아 낼 뿐 아니라 일자리도 창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경제·금융분야의 환경 변화도 글로벌 기업들의 중요한 관심거리다. ‘경제·금융 분야에서는 이미 다자주의 시대가 개막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무조건 미국을 모방하는 시대는 끝났고, 세계의 권력이 분권화되고 있다. 베스트셀러 <흔들리는 세계의 축(The Post-American World)>의 지적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쇠퇴한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발전과 성장이 더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 편집장은 “세계가 직면한 도전은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라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지만 유엔이나 IMF는 힘이 모자라 G20이 새로운 국제 시스템의 중심으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기업들의 목표 변화로 인한 변화

금융 기업들의 패러다임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 기업의 변화는 국내 기업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중요한데, 특히 주목할 것은 글로벌 금융 리더 가운데 하나인 씨티그룹의 움직임이다. 씨티그룹은 그동안 급증하는 부실여신과 자산상각으로 손실이 커지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450억 달러를 지원받았으며, 정부가 보유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사실상 국유화 단계에 이르렀다. 이 같은 세계적 금융 기업의 변화에 따라 국내 금융 흐름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 씨티그룹 등 분야에 관계 없이 글로벌 기업의 기업환경 변화는 곧바로 후발 기업은 물론 소규모 기업들에까지 전이되고 있다. 기업 핵심동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터 교수는 “한국 경제는 R&D, innovation, globalization 등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취약한 노사관계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부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화되었지만 아직도 글로벌 전체로 보면 규모가 빈약한 편”이라면서 “인적자원 활용 등을 통해 보다 글로벌화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의 시기를, 세계적인 기업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고 내실을 기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 김경도 /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2009. 5. 5. 16:52

경제위기, 세계 공존의 도화선으로 삼을 수 있을까 - 셋

[석학에게 묻다] ③경제위기, 세계 공존의 도화선으로 삼을 수 있을까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금융위기는 실물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짧은 기간 내 세계 경제를 침체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국제금융기구나 경제 석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 경제의 위기가 오래 지속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갖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국제 정세 변화의 흐름을 함께 읽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국제 정세를 알기 위해서는 2009년의 뜨거운 이슈인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방향과 G20 정상회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정세, 공존의 시대 개막

2009년, 미국이 역사 이래 첫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그는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힘의 외교를 내던지겠다고 공언했고, 이는 미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국제 정치가 공존의 시대로 들어설 것임을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 정권이 8년간 상징화한 미국의 독주를 반성하며, 세계를 향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함께 열자고 선언했다. 그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주변국과의 공조를 요구하며 손을 내밀었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은 이제 다극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을 맞은 셈이다. 테러, 핵 개발·확산, 기후변화, 빈곤, 전염병, 인종 간 갈등 등 국제 정치에서 각국 간 공조를 필요로 하는 현안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제 정치 분야의 석학들은 ‘공조와 협력 그리고 대화'를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에서부터 행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자문역할을 했던 브루킹스연구소의 스트로브 탈벗 소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 정책 과제는 동맹국들과 공조·협력의 틀을 확대하고 적대국과도 협상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 평화와 공존을 지향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탈벗 소장의 조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념 철학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조지 부시 행정부와 가장 다른 부문은 대외 정책이 될 것”이라며 “오바마 행정부는 이념 논란에 매달리기보다는 한 단계 높은 실용주의에 더 주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앞세워 ‘스마트 파워 외교'라는 새로운 노선을 실천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에서 30여 년간 베테랑 외교관 경험을 가진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은 “아무리 현안이 많더라도 동시에 여러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며 “미국 행정부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가졌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극복과 이라크 철군 및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 등 오바마 대통령이 내건 우선 과제에만 빠져 다른 사안을 뒤로 미루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국제 경제 권력의 재편

최근 경제위기 때문에 국제 경제 권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G20 정상회의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금융위기 해법 공조를 위해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처음 열린 G20 정상회의에는 기존 선진국 외에 신흥시장 국가들이 한 축을 차지했다. 올 4월 초 런던으로 이어진 2차 G20 정상회의는 국제 경제 권력에서 G7으로 대표되는 선진국 간의 독점적 지위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G20 회의는 원래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 간의 회동에서 출발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 사회에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마침내 1999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때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G7 국가 외에 주요 신흥경제국을 참여시키는 G20 창설을 합의했다.

회원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 일곱 개 선진국(G7)에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한국 등 지역별 열두 개 신흥경제국을 끌어들였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의장국이 추가됐다.

 

그동안 국가 간 경제외교와 역학관계에서 선진국들에게 밀린 신흥경제국들의 목소리가 G20의 부상에 비례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런던에서 열린 2차 G20 정상회의는 선진국과 신흥경제국 간의 줄다리기와 힘겨루기 속에서도 여섯 개항의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일단 외형상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일부 국가들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5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이 추가로 약속됐으며, IMF 등 국제기구의 재원을 1조 1,000억 달러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같은 거액이 과연 제대로 모아질 수 있는지, 집행될 것인지에 대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한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G2O은 당분간 국가 간 정책 협의체로서 우월적인 위상을 인정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에 대한 기대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확산된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양날의 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변화와 위기를 준비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이들에게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변화를 한발 앞서 예측하고 거기에 미리 대비하는 지혜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 윤경호 /
매일경제신문 워싱턴특파원


2009. 5. 5. 16:49

지금 위기에서 자유로운(immune) 나라는 없다 - 둘

[석학에게 묻다] ②지금 위기에서 자유로운(immune) 나라는 없다
 

‘100년 만이라는 경제불황에 직면한 세계 경제. 국제금융시장을 제패했던 미국의 금융질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신 브레튼우즈 체제(달러의 기축통화로써의 가치가 상실되어 가는 와중에 통화 인지도와 유통량에서 엔화, 유로, 달러를 기준환율로 동시 설정하는 것)로 대변되는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내리기란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경제위기를 연구하고 보다 나은 경제질서를 찾아 온 세계 경제 석학들의 의견을 통해 좀 더 폭넓은 혜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석학들의 미래 경제전망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는 올해 세계 경제의 키워드를 ‘불확실성'이라고 제시했다.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프린스턴대 고등과학원 교수는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이 엄청난 재정을 쏟고 있는데, 이는 결국 미래로부터 빌려 오는 것이다. 우리의 아들, 손자들에게서 미리 빌려 와서라도 경기를 부양한 뒤 자손들에게 다시 갚을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비관적인 인식이다.

더욱이 한계 기업 퇴출과 구조조정이 핫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실업, 고용 대란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건설 등 세계 유수의 제조기업들은 사상 최악의 적자 행진 속에 감원, 감산 계획을 쏟아 내며 전 세계를 실업대란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괜찮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경제 석학들이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나리만 베라베시 미국 IHS(경제전망 기관) 부사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권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하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선진국 동시불황에 미리 대비해서 국가 운영과 기업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촉구했다.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는 경기침체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기업이나 개인의 위기 대응방식도 명확해야 한다.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 월터 쇼렌스타인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의 시기에는 현금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짜야 한다”며 “기업이나 개인은 당장 유동화할 수 있는 현금 자산 비중이 전체 자산 중 최소 20%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정부의 역할도 과거보다 크게 중요해졌다. 린이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가의 자산이 될 만한 장기투자를 통해 위험 시기에 자산을 보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는 어떤 약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한국 경제에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제 2의 환란설'로 몸살을 앓았던 한국 경제에 대해서 외국 석학들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와세다대 교수는 “한국이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하루아침에 뜯어고치기는 어렵다”면서도 “외부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시장 안전장치를 더 확실하게 구축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실체 없는 위기설에 계속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전면 도입한 미국식 시장 경제 모델, 주주가치 우선 경영이 과연 절대적인 가치인지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한국 경제는 40여 년간 경제 성장을 이어 왔지만 아직도 채워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환율 시스템이 매우 취약하다는 게 염려스럽다. 미국, 중국,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를 맺었지만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나 한국을 달러 우산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곱씹어 봐야 한다. 에릭 매스킨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 교수는 “결국 길게 보면 세계는 단일통화로 가지 않을까 싶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의 통화 연합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것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을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외환위기 가능성에 취약한 한국 경제가 가장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금융시장의 재편으로 인한 변화

이번 세계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재편 물결은 아시아 위상에도 큰 반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이 지배했던 금융 헤게모니를 놓고 일본과 중국이 경쟁하는 양강구도로 빠르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금융위기 이후 더욱 막강해진 ‘엔화 파워'를 앞세워 단일통화를 주장하고 있고,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을 지닌 중국도 화교경제권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따라서 막강한 기술력을 가진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과 세계 최대 소비·생산공장인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느냐, 이들 두 나라를 디딤돌 삼아 경기침체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국가가 되느냐, 위기의 파고 속에서 한국은 문자 그대로 생사기로의 갈림길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위기에서 자유로운(immune) 나라는 없다. 국제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사이 순식간에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 김경도 /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2009. 5. 5. 16:45

경제회복? “2010년 경에야 기대할 수 있을 것 - 하나


[석학에게 묻다] ①경제회복? “2010년 경에야 기대할 수 있을 것”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경제학자들에게 세간의 관심이 쏠리게 됐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자들이 자연스럽게 할 일이 많아졌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의사를 찾지 않다가도 몸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를 찾게 되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저명한 세계적 경제 석학들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해 어떤 평가와 해법을 내놓고 있는지 알아 보자.


경제학자들에게 쏠리는 관심

“경제위기가 경제학자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있다.”
지난 1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연례 학술대회에 참석한 한 저명한 학자가 농담식으로 던진 말이다. 그는 글로벌 경제위기 고조로 경제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관심이 쏠리면서 경제학자들이 바빠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을 전후해서 금융위기 문제와 자본주의 미래를 듣기 위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설마 했던 월가가 사실상 붕괴되고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가 흔들리면서 이에 대한 해석과 향후 전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원인은 총체적인 문제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촉발된 경제위기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시절 저금리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제주체들의 과욕을 부추기면서 버블(거품)이 형성됐고 그 버블이 터지면서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는 설명이다. 물론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금융환경이 이번 경제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을 미국의 저금리정책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FRB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2002년 이후 미국 FRB가 저금리 상태를 필요 이상으로 오래 끌면서 금융위기가 확대된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금리가 최근의 거품과 위기를 만들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빚어진 시장 실패와 잘못된 정책에 따른 정부 실패가 위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민간부문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에 대한 과도한 보수 책정 등 잘못된 인센티브 관행과 위험관리 실패가 원인이 됐고 기업 이사회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신용평가기관들도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대내외의 감독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설명이다.

국제금융 분야 석학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금융위기 원인을 저금리정책 탓으로 돌리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저금리정책은 실제 시장금리를 조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막대한 달러 유동성과 미국 경상수지 적자라는 글로벌 불균형이 지속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로고프 교수는 이와 함께 정부의 안이한 대처 역시 금융위기를 초래한 요인으로 꼽았다.

 


경제위기 회복 오래 걸릴 듯

최근 들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제에 희망이 보인다고 밝히는 등 경제가 조만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석학들 사이에서는 이번 경제위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2009년까지는 지속되고 2010년 경이나 회복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2년 전에 이미 위기를 정확히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와 세계 경제침체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닥터둠'으로 불리는 루비니 교수는 “미국 경기침체가 적어도 올해 말까지 지속됨으로써 대공황 이후 최장기간인 24개월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글로벌 경제위기는 최소한 18개월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국제금융통화 부문 세계적 권위자인 배리 아이켄그린 UC(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역시 금융위기와 경제위기가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는 “금융위기가 2009년에 끝나면 다행이며 전 세계 경기침체가 끝나고 회복세로 돌아서려면 잘해야 2010년 경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효율적인 시장시스템 구축 필요

경기침체 장기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세계적 석학들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위기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리를 낮추고 양적 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보다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을 수립해 경기를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정부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경기부양책 마련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전문가들의 제언을 받아들였거나 의견을 같이 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자율을 중시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의 허점이 드러남에 따라 기존의 금융시스템과 경영진들에 대한 보수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번 위기는 시장지상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면서 “정부와 시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혼합경제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탐욕스런 월가의 관행에 적절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민간 기업들의 과도한 보수체계도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토마스 쿨리 뉴욕대 경영대학원 원장은 “경영진의 보수는 장기적 성과에 따라 책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

과거의 사례를 볼 때 극복되지 않은 경제위기는 없었다. 최악의 경제위기로 인식되고 있는 1930년대 대공황도 끝내는 지나갔다. 많은 석학들은 다만 위기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경제 참여자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각국의 정부들이 경제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경제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 국가 중에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자국의 산업 보호에 초점을 맞춰 보호주의가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는 최근 들어 일부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면서 경기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실업률 증가가 지속되고 있고 소비 위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단기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임시방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 위기를 통해 자원이 보다 효율적으로 분배되고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경제위기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들 역시 이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휴대전화, TV, 자동차 등이 세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힘들지만 최근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잘 준비한 기업들은 경기회복시 수혜를 볼 수 있다.

이번 경제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노력은 비단 정부와 기업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의 가장 기본적 주체인 개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 위정환 /
매일경제신문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