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5. 08:29

숫자 이야기 4

[숫자 이야기] 인류는 왜 ‘12’를 경외했을까?
 

우 리 주변에는 유난히 숫자 12가 많다. 12개가 들어 있는 연필 한 다스, 12달로 이루어진 1년, 12마리의 동물로 구성된 십이간지 등 일상 곳곳에서 12를 발견할 수 있다. 10진법을 쓰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셈하기도 쉽지 않은 12라는 숫자를 사용하게 된 것은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일까. 열두 번 생각해 보면 답이 떠오르지 않을까.

12에 '완전함'의 의미를 넘어 종교적인 의미까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일상에서 만나는 '12'가 달리 보일 것이다. 


걸리버에게 1,728명분의 음식을 준 까닭은

우리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에 <걸리버 여행기>가 있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처음 들어 보는 신기한 세상에 놀라기도 하고 여행에 대한 동경도 가졌었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소인국의 왕이 걸리버에게 하루에 1,728명분의 식량을 지급하였다는 사실이다.

왜 왕은 키가 큰 걸리버에게 10명이나 100명, 1,000명이 아니라 기억하기에도 힘든, 1,728명분의 음식을 주었을까? 영국의 어린이라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영국의 소설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는 당시 영국에서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 중에 작은 단위를 사용하여 소인을 만들었다. 즉, 걸리버의 키가 6피트(약 180cm)이고 소인은 6인치로 설정한 것이다. 1피트는 12인치이므로 걸리버와 소인의 키의 닮음비가 12:1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면 부피의 비는 123:13=1,728:1이 되므로 1,728명분의 식량이 필요하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에도 숫자 12가 숨어 있다. 거인 걸리버와 소인의 키 비율은 12:1, 부피 비율은 이에 세제곱을 한 1,728:1. 그래서 걸리버에게 제공된 음식이 1,728명분이었다.
 

완전함ㆍ전부 그 자체여서 신성시됐던 숫자 12

이와 같이 영국에서는 12라는 수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1파운드가 12온스이고, 1인치는 12라인이다. 어디 그뿐인가? 성경에서도 12라는 수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으며,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이고, 모세가 시내산 아래 쌓은 제단의 기둥도 열두 개이며, 예수의 제자 역시 열두 명이었다. 또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빵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12라는 수가 하나의 단위가 되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도 중요하게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1년이 열두 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달이 지구를 12번 돌게 되면 새롭게 계절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1년을 열두 달로 정하였던 것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역법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달의 움직임으로 계절을 훌륭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12라는 수는 완전함ㆍ전부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12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2라는 수는 신성한 수로 여겨지는 3과 질서ㆍ조화ㆍ완성을 의미하는 4와의 곱이기도 하다. 또한 완전수인 6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12니, 12라는 수에 완전함의 의미가 더욱더 부가될 수밖에 없다.

 달이 지구를 12번 돌면 해가 바뀌고 새롭게 계절이 다시 시작한다.
그 옛날 12라는 숫자가 완전함을 넘어 종교적으로 중요시되었던 것은,
이처럼 달의 움직임이 생활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 리듬도 이미 12박자?

우리 주변에서는 12라는 수가 어디에 사용되고 있을까?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시계이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오전 12시간과 오후 12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시계에서는 12라는 수가 가장 크다. 그러나 옛날에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으로 구분되었다. 사주를 보거나 할 때는 태어난 시간을 알아야 하는데 이때 주로 '자시'나 '축시' 같은 말을 주로 사용한다. 그 시간은 다음 표와 같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살이에요?”라고 묻기보다는 “몇 년생이에요?” 또는 “무슨 띠예요?”라고 묻곤 한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12가지의 동물 이름을 이용하여 나타낸다. “소띠입니다” 혹은 “호랑이띠예요”라고 대답한다. 또한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 올해는 “무슨 해이지요?”라고 묻곤 한다. 올해 2008년은 무자년(戊子年) 쥐띠의 해이다. 그리고 동갑이라는 말도 있다. 후배 중에서 12살 어린 띠 동갑 후배는 특별히 가까운 느낌이 들고, 띠 동갑끼리 결혼했다고 하면 왠지 부럽기도 하다.

이런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오천 년 전 중국의 황제가 갑자를 지어냈는데, 갑ㆍ을ㆍ병ㆍ정ㆍ무ㆍ기ㆍ경ㆍ신ㆍ임ㆍ계라는 10개의 천간과, 자ㆍ축ㆍ인ㆍ묘ㆍ진ㆍ사ㆍ오ㆍ 미ㆍ신ㆍ유ㆍ술ㆍ해라는 12개의 지지가 그것이다. 이것이 서로 순서대로 결합하여 해를 나타내는 이름이 되었다.

‘ 연필 한 다스', ‘양말 한 다스'와 같은 표현에서 보는 것처럼 ‘다스'는 물건 열두 개를 묶어 세는 단위로 사용된다. 우리는 또 가끔 “열두 번도 더 검토해 보았다”와 같이 말하는데, 이때의 ‘열두 번'은 실제로 열두 번을 해본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많이' 해보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시계에서는 12가 가장 큰 수다. 올해는 쥐띠 해, 십이간지 열두 동물 중의 첫머리다. 연필 한 다스에는 12개가 들어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12가 많기도 하다.
 


12진법 사용했다면 문명 더 발전했을 것

우리가 사용하는 단위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피트는 발바닥의 길이이며, 야드는 한 팔의 길이이다. ‘열'은 두 손의 손가락 수이며, ‘스물'은 손가락과 발가락 모두를 합한 것이다. 로마에서는 5(Ⅴ)를 하나의 단위로 사용하였는데, 이것 역시 한 손의 손가락 수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가 10진법이나 5진법, 20진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데 12를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니다. 중국의 황제(黃帝) 때 하늘에서 10간과 12지를 내려 주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하늘이 아무 이유도 없이 무작정 10개의 천간과 12개의 간지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학사(數學史)적으로는 그 당시 10진법과 12진법을 사용하는 문명이 통합되어 이로부터 60진법이 생겨났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역 법이 발달하여야만 12나 60이라는 수를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12라는 수를 사용한 문명은 분명 아주 과학이 발달한 문명이었을 것이다. 수학적으로도 10보다는 12라는 수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한데, 그 이유는 10의  약수가 1, 2, 5, 10인데 반해, 12의 약수는 1, 2, 3, 4, 6, 12와 같이 더 많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만약 12진법을 사용했다면 분수를 소수로 나타낼 때도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의 손가락을 5개가 아닌 6개로 만들어 주셨다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12진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지금보다 더 일찍 더 고도의 과학 문명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 글

강문봉 / 경인교육대학 수학교육과 교수, 수학과 문화 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