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4. 22:12

숫자 이야기 3

[숫자 이야기] 숫자 9, 생활의 지혜를 ‘구’하다.

많은 숫자 중에서 9처럼 여러 의미를 갖고 있는 수도 드물다. 9가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둑에 붙으면 최고의 실력자란 의미가 되고, 가격에 붙으면 저렴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9를 가리켜 '다른 모든 숫자는 그 수 속에 존재하며, 그 속에서 순환하는 것으로 숫자의 한계를 나타내는 수'라고 하면서, 9에는 완성ㆍ전체ㆍ성취 혹은 불후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았다.

9를 알면 우리도 '생활의 9단'이 될 수 있다. 


바둑에서는 왜 9단이 최고일까?

신문 지상에 ‘정치 9단'이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고 정치 감각이 남다른 정치인들에게 붙였던 수식어이다. 최근에는 정치 10단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그런데 왜 하필 9단이고 10단일까? 정치 100단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아부였을까?

아마도 정치 9단은 바둑 9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바둑에서는 가장 잘 두는 사람이 9단이며, 10단은 없다. 일본에는 10단이 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창호 10단'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것은 10단전에 우승한 사람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다. 그러면 왜 바둑에서는 9단이 최고 경지일까?

6세기 전반에 중국의 양무제 때 바둑의 순위를 9등급으로 정하였다. 초단은 수졸(守拙), 2단은 약우(若愚), 3단은 투력(鬪力), 4단은 소교(小巧), 5단은 용지(用智), 6단은 통유(通幽), 7단은 구체(具體), 8단은 좌조(座照), 그리고 9단은 입신(入神)이라 하여 신의 경지에 이르는 수준이다.

아마도 이런 순서를 정한 것은 9라는 수가 한자릿수에서는 가장 큰 수이며 그래서 완전함을 의미하는 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둑에서의 이런 구분이 다른 영역에도 확산되어 정치 9단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며, 술을 마시는 데도 9개의 급과 9개의 단으로 구분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바둑 9단이나 정치 9단은 좋지만 음주 9단은 추구하지 말자. 음주 9단은 다름 아닌 폐주(廢酒) 또는 열반주(涅槃酒)이니, 곧 술로 인해 저승으로 간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숫자 9를 연상시키는 물건이나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보다는 숫자 9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숫자 9, 마케팅에 눈뜨다
 

바둑 9단이라는 용어는 9가 완전함ㆍ최고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자릿수에서 가장 큰 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수가 다 그렇듯이 9라는 수 역시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3은 아주 성스러운 수이다. 목숨을 살려 준 잉어가 어부의 소원을 3가지 들어 주었고,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알라딘에게 3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여러 동화에서는 소원을 3개만 들어주는데, 3은 완성ㆍ신성ㆍ조화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9는 3×3이니 아주 신성한 수이기도 하다.

<왜란종결자>라는 판타지 소설에서도 구미호가 큰 활약을 하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 하필 꼬리가 9개 달린 여우가 그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아홉이라는 수가 갖는 신비함 때문이 아닐까? 구사일생, 구중궁궐, 구천 등과 같은 표현에서는 '구'가 많다ㆍ깊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9는 불완전과 결함, 모자람의 수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십진기수법의 10이라는 수에서 하나 모자란 데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물건을 살 때마다 1센트씩 거스름돈을 받았다. 물건값이 대부분 몇 달러 99센트이거나 몇십 9센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귀국할 때는 1센트 동전이 너무 많아서 처분하기가 곤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물건값이 90원ㆍ990원과 같이 100원ㆍ1,000원에서 10원 적게 책정된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소비자는 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이처럼 3과 4에서의 1의 차이보다는 9와 10에서의 1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역시 9가 불완전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홉수라 해서 29살에 결혼을 피하는 관념에도 9가 좋지 않은 수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결국 9가 한자릿수에서 가장 큰 수인가, 완성된 10이라는 수에서 하나 모자란 것인가의 어느 것에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수의 의미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자릿수만 낮춘 숫자 9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충동구매를 이끌어 내는 큰 역할을 한다.


구거법, 인도ㆍ아라비아의 지혜를 전하다

수학을 하다 보면 9라는 수에 아주 신기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구구단의 9단이다. 9단은 암기하는 것도 쉬울 뿐만 아니라, 곱셈 결과인 9, 18, 27, 36, 45, 54, 63, 72, 81 모두 각 자리 수의 합이 다시 9가 된다. 특히 구단은 손가락을 이용해서 암기할 수도 있다.

다음 그림 1을 보자. 3×9를 계산할 때 3, 즉 왼쪽에서 세 번째 손가락을 접는다. 그러면 접힌 손가락의 왼쪽 방향에 있는 손가락 수가 십의 자리 수 2가 되고 오른쪽 방향에 있는 손가락 수는 일의 자리 수 7이 되어 3×9=27이 되는 것이다.

 

 3X9를 계산할 때는 왼쪽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손가락을 접으면,
접은 손가락의 왼쪽 방향의 남은 손가락 수가 십의 자리 2, 오른쪽 방향의 남은 손가락 수가
일의 자리 7이므로 27이 된다. 다른 계산도 마찬가지다.
지금 손가락으로 6X9를 계산해 보자. 여섯 번째 해당하는 손가락,
즉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접고 시작하면 된다.

구거법(九去法)이라는 검산 방법도 있다. 구거법이란 9를 버린다는 의미인데, 9를 버리고 남은 수로 계산하는 것이다. 9를 버리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9로 나누어서 나머지만 생각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누는 일 자체가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각 자리 수를 모두 더한다. 569342라는 수를 생각할 때 각 자리 수의 합은 5+6+9+3+4+2=29이고 이 수의 각 자리 수를 또 더하면 2+9=11, 다시 더하면 1+1=2가 된다. 실제로 569342를 9로 나누면 나머지는 2가 된다.

만약 이 방법도 귀찮으면 처음부터 합해서 9가 되면 버린다. 즉, 569342에서 천의 자리 수 9는 버리고, 6과 3을 더하면 9가 되므로 이것도 버리고, 5와 4도 더하면 9가 되므로 이것도 버리고, 그러면 남는 수는 2뿐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569342의 경우 나머지는 2라는 수가 나온다.

이런 식으로 해서 나온 한 자리 수만 가지고 계산을 하여 그 결과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구거법이다. 예를 들어 364×56=20384가 맞는지 확인해 보자. 구거법을 적용하면 364는 4가 되고, 56은 2가 된다. 그러므로 364×56의 결과에 구거법을 적용하면 4×2=8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계산 결과인 20374는 7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계산은 틀린 것이다.

구거법에 의해 틀린 결과가 나오면 이 계산은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맞는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계산이 맞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런 검산법은 의외로 간편하기 때문에 아라비아 사람들이 사용했고 이것이 유럽에 전파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이렇게 흥미 있는 구거법은 아라비아 사람이 사용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지만 아라비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러한 구거법이 다름 아닌 9가 10보다 1 적은 수라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숫자 9는 1이 적다고 해서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신비감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수학에서도 이럴진대, 우리 인생에서도 우리가 가진 단점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장점으로 탈바꿈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못생긴 얼굴이 다른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어 더 많은 친구가 생길 수도 있고, 음치라서 친구들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 글

강문봉 / 수학과 문화 연구소 연구원, 경인교육대학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