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4. 17:09

숫자 이야기 1

[숫자 이야기] 수학 배워서 어디 써먹냐고? 커피심부름에도 유용한 숫자이야기

학 창시절, 선생님의 호명에 어쩔 수 없이 칠판 앞에 불려 나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학 문제를 붙들고 끙끙대다가 창피를 당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누가 '수학'이라는 단어만 써도 왠지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수학을 배웠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써먹을 곳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뜻도 모르는 긴 공식들을 왜 그리 힘들게 외웠나 싶어 억울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수학의 소산이며, 수학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 지금부터 회사원 K씨의 하루를 따라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수학의 원리를 찾아보자. 


아, 다행이다! 1년이 12달이어서!

회사원인 K씨는 아침 7시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깬다. 하루의 시간을 24등분해 놓은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에 의해서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12진법의 영향이 크다. 하루를 24시로 나누면 여러 가지가 편리하다. 24의 약수(어떤 수나 식을 나머지 없이 나눌 수 있는 수)가 꽤 많기 때문이다.

24의 약수는 1과 24를 제외해도 2, 3, 4, 6, 8, 12 이렇게 6개나 된다. 하루를 2시간씩, 3시간씩, 4시간씩 등분하면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에 편리하다. 8시간씩 쪼개면 아침ㆍ점심ㆍ저녁이 되고, 12시간씩 둘로 쪼개면 오전과 오후가 된다.

1년이 12달인 것도 이와 비슷해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 만약 1년이 10달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지만, 사실 초기 로마력에는 1년이 10개월밖에 없었다. 기원전 710년경 고대 로마의 통치자 누마 폼필리우스가 11월(Januarius)과 12월(Februarius) 2개월을 더 추가하여 12개월을 만들었다. (고대 로마 초기에는 현재의 3월을 의미하는 Martius가 1월이었으나, 기원전 46년 Januarius와 Februarius를 각각 1월과 2월로 만들면서 March는 3월로 밀려났다.)

이는 1년을 365일로 정할 때 10달이면 번거로움이 많았기 때문에 다시 12달로 바꾼 것이다. 만약 1년이 10달이었다면 지금처럼 4분기 또는 다른 동기간(同期間)으로 나누기가 힘들었을 테니 또 다른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았을까?

 


커피믹스에도 황금비율이 숨어 있다

회사에 도착하면, 커피를 한 잔 마셔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의 맛은 커피의 농도가 좌우하는데, 농도를 일일이 정확하게 측정하여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장에서 커피를 맛있게 타기로 유명한 K씨는 그 나름대로의 비결이 있다.

인스턴트 커피를 조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양. 종이컵에 ‘나름대로의 황금비율', 즉 컵 높이의 65~70% 사이 만큼만 물을 넣어야지, 그보다 많으면 커피 맛이 밍밍하다. K씨는 특히 ‘커피를 먼저 컵에 넣고 물을 넣어야' 커피가 맛있으며, 물을 먼저 넣고 커피를 넣으면 별로 맛이 없다는 주의(?)를 고집한다.

그 이유는 커피를 먼저 넣고 거기에 물을 첨가해야, 물의 양이 컵을 기준으로 황금비율을 벗어나지 않아 커피 맛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물을 먼저 따른 후 커피를 넣으면, 커피를 먼저 넣고 물을 따르는 것보다 컵에 물이 많이 들어간다.

우리는 무의식중에도 매사에 황금비율을 적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물을 컵에 따른 양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대충 황금비율에 맞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쨌거나 커피믹스 제조회사로서는 종이컵을 기준으로 ‘커피믹스+물'의 양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맛있어 하는 커피 맛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때문에 커피믹스 내용물의 양을 결정할 때도 ‘나름대로의 황금비율' 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학에서 정확한 황금비율은 1:1.618로 어느 날 갑자기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인류가 꽤 오랫동안 선천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자연적인 비율로, 이는 특히 자연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일종의 규칙이다. 달팽이 껍질의 나선은 한 변의 길이가 1, 1, 2, 3, 5, 8, 13…(이러한 수열을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한다) 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을 부분으로 하는 원의 호를 연결한 형태인데, '앞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뒤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의 비'는 수가 커질수록 1.618에 수렴한다.

 

주변에서 황금비율이 적용되는 예는 의외로 많다. 축복받은 ‘이상적인' 인체라 함은 키의 경우 배꼽부터 발 밑까지의 하체:키=1:1.618 의 비율을 의미하며,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미술품들은 대부분 가로와 세로의 비가 황금비율이다.

명함, 신용카드, 액자, 창문, 책, 십자가 등에도 예외 없이 황금비율이 적용된다. 또한 16:9의 비율을 갖는 HDTV나 컴퓨터 와이드 모니터 등도 황금비율의 근사값이라 할 수 있다.


소주 자주 마시면 수학도 잘할까?

K씨는 퇴근길에 동료와 함께 삼겹살에 소주 한 병을 시킨다. 특히 소주는 소주 회사에서 나오는 소주잔으로 마셔야 제 맛이 난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소주 한 병에 들어가는 소주의 양은 이 소주잔을 기준으로 정확히 7잔이다.

그 런데 이 ‘7'이란 수가 오묘해서, 2명이 3잔씩 나누어 마시면 1잔이 남고, 3명이 2잔씩 나누어 마셔도 1잔이 남는다. 4명에게는 2잔씩 채 돌아가지 않는다. 5명일 때도 마찬가지다. 이유인즉, 소수(素數)인 7은 1과 7 외에 그 어떤 수로도 등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2명이서 소주 한 병을 마시면 소주 한 잔이 남거나 혹은 모자란다. 소주잔으로 7잔이 나오는 소주, 여기에도 수학의 원리가 숨어 있다.

결국 아쉬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2병을 시키게 된다. 그럼 두 번째 병은 또 어떠한가? 총 14잔이라고 할 때, 3명이 4잔씩 마시면 1명분의 잔이 모자라고, 4명이 마시면 3잔씩 마시고 2잔이 모자라게 된다. 또 5명과 6명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5명이 3잔씩 마시려면 1잔이 모자라고 6명이 마시면 2잔씩 마시고 2잔이 남는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하면, 한 잔 주고 한 잔 받는 우리네 주도로 보아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3병까지 시키고 나서야 적당히 취하기도 하고, 정 없다는 비난도 면할 수 있는데, 이는 3이라는 완전수(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조화ㆍ완성이라 인식되는 '완전한 수')에 도달해야 비로소 술자리가 파하게 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주 한 병의 양이 제조회사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업적 소수(素數)'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7잔으로 정해진 소주잔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아주 사소한 부분에도 나름대로 ‘이유 있는' 수학이 내재해 있는 것들이 있지만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어렵게 수학을 배우기만 하고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수학 원리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채 학창시절이 끝난다는 데 있긴 하다.

하지만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에서 배웠던 간단한 수학 원리를 적용해서 골똘히 파고드는 습관을 가져 본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학에 자신감이 생기고 재미 또한 느끼게 될 것이다.


- 이화영 / 수학과문화연구소 연구원, 시흥 송운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