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4. 08:56

권력이동 4

[권력이동4] 경제적 파워보다 문화적 파워! 문화 리더십이 부(富)를 부른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품의 기능보다는, 그것에 담겨 있는 시대정신과 스토리텔링, 라이프스타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시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기업은 물론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힘도 경제적 파워에서 문화적 파워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경제에서 문화로 힘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문화경쟁력을 키우는 길, 그곳에 부(富)가 있다. 


하드 파워 가고 스마트 파워 온다

2007년 초 미국 워싱턴의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스마트파워위원회'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팀을 발족했다. 위원회는 ‘슈퍼 파워'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차기 미국 행정부의 외교 안보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10개월간의 작업 끝에 2007년 11월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 보고서의 골자는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 즉 ‘하드 파워(Hard Power)'로 지배하던 시대의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새롭게 선택한 외교전략은 무엇일까. 바로 ‘스마트 파워(Smart Power) 전략'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지구촌을 지배하는 대신에 문화 리더십, 즉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현재의 리더십을 보완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현재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하드 파워'와 문화 리더십으로 지구촌을 이끄는 ‘소프트 파워'를 접목해 ‘스마트 파워'란 신개념을 만들어 냈다.

 


21세기의 자산은 '사회적 자본'

한 나라의 국부를 창출하는 데 어떤 자본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까? 세계은행이 2007년 10월 ‘국부는 어디에서 오는가(Where is the Wealth of the Nations?)'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한 나라의 국부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자본은 자연자본(Natural Capital), 생산자본(Produced Capital), 무형자본(Intangible Capital)으로 나뉘는데, 세계은행은 이들 세 가지가 한 나라의 국부를 창출하는 3요소라고 진단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법질서와 신뢰ㆍ문화경쟁력으로 대표되는 무형자본, 즉 사회적 자본이 국부를 창출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왜 그럴까? 세계은행은 이들 3가지 자본의 국부창출 기여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OECD국가는 자연자본과 생산자본의 국부창출 기여도가 각각 2%, 17%인데 반해, 사회적 자본의 국부창출 기여도가 무려 81%로, 국부의 대부분이 사회적 자본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에 후진국은 3가지 자본의 국부창출 기여도가 각각 26%, 16%, 50%로 OECD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취약했다.

 


한국의 사회적 자본, 선진국의 3분의 1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세계은행에 따르면 OECD국가의 평균 사회적 자본은 1인당 35만 3,339달러지만, 한국은 10만 7,864달러로 3분의 1(30.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자본이란 신뢰와 법질서처럼 사회가 공유하는 규범과 가치, 즉 문화적 자산을 일컫는다. 이것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는 물론 사회ㆍ기업을 이끄는 힘이 경제적 파워가 아니라 문화적 파워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사회를 지배하는 힘이 단순히 돈이 아닌 품격이 됐음을 상징한다.

한국의 기업과 국가는 이 문화적 자산이 빈약하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브랜드 조사기관인 안홀트 지엠아이(Anholt-GMI)가 2007년 조사한 국가브랜드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32위로, 이집트나 인도보다 뒤처져 있다.

안홀트 지엠아이의 조사에서 2007년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순위는 세계 32위. 이처럼 낮은 평가는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빈약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에 반해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는 1~4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존경받는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국가브랜드 파워는 기업 상품의 가치까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 2008년은 ‘드림 소사이어티' 원년

결국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진다. 문화자산의 가치를 키워야 한다. 특히 2008년은 우리 한국에 매우 의미 있는 해이기 때문에 문화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가 2008년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원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드림 소사이어티란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이 1999년 펴낸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제목이자 사회변화 이론이다. 그는 21세기는 ‘꿈'과 ‘감성'이 지배하는 꿈의 사회, 즉 드림 소사이어티가 열린다고 예견했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5,000달러 시대에 시작돼 2만 달러 때부터 본격화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은 2007년 12월 1인당 국민소득 2만 45달러 시대를 열었고, 롤프 옌센의 주장대로 제품의 기술(Technology)과 기능(Function)이 중요하던 시대에서 감성(Emotion)이 중요한 시대로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도 디자인과 브랜드, 스토리 텔링을 통해 고객들의 ‘감성'을 공략하고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어 소비자의 감성을 잡아 내는 기업이 부를 창조하는 주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물건이 꼭 ‘필요(Need)'해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Want or Like)' 산다.

따라서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나 국가 경영자, 직장인들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읽어 기업 활동에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 리더십이 기업의 핵심경쟁력

감성과 문화가 지배하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한국보다 20년 앞서 일본에도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이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맞이한 것은 1987년. 이때를 시작으로 일본에는 효율성과 기능ㆍ품질을 뒤로하고 풍요와 여유ㆍ감성ㆍ체험ㆍ프리미엄 등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기업의 마케팅 전략도 급변한다.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저가 경쟁 대신에, 고가ㆍ고수익 제품을 통해 고객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한다. 투자 또한 제품의 기능이 아닌 디자인의 가치를 상승하는 분야에 맞춰진다. 이 같은 트렌드 변화는 소비자의 구매 결정이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으로 이루어진 데 따른 것이다. 이런 점을 활용해 디즈니랜드, 나이키, 할리데이비슨, 애플 등은 감성마케팅으로 고객을 유혹한다.

왜 이처럼 문화적 감성이 중요한 시대가 됐을까? 롤프 옌센은 “부의 축적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만 구입했지만 지금은 꼭 필요해서 구매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에 감정이 끌려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스토리가 물건을 사게 만든다

기업들은 이 같은 감성사회에서 어떻게 문화 리더십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스토리텔링은 소비자에게 경험과 감성을 팔아 돈을 버는 전략이며, 이것이 바로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 리더십이다. 사람들은 이제 가격이나 품질, 즉 경제성만을 보고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좌우하는 스토리를 보고 구매한다.

소비자들이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폰에 열광하는 것도 그 제품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와 대화가 있는 ‘문화 공간'을 팔고, 나이키는 단순히 신발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의 ‘환상'을 팔고 있다.

이는 21세기 문화시대, 상품에 꿈과 이야기를 담아야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삼성전자가 앙드레김 냉장고나 앙드레김 에어컨을 만든 데 이어 아르마니TV를 만든 것도 IT라는 첨단 제품에 패션이라는 문화의 옷을 입힌 것이다.

 

롤프 옌센은 “문화ㆍ감성의 시대에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기술이 바로 부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라며 “IT가 그 자체로 점차 매력을 잃어 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IT와 예술,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스토리텔링과 결합해 위력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최은수 / 매일경제신문 세계지식포럼 팀장.
                   저서 <다보스포럼 리포트: 힘의 이동>, <부의 창조>,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나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