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9. 08:25

詩가 있는 일상 2

[詩가 있는 일상] 자서전을 쓰고 싶을 만큼 열심히 살아 보기나 하자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슬슬 쓰다듬는 것 같은 그의 시를 읽고 있자니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고, 처음으로 그가 쓴 시로부터 강한 울림을 받았다. 그 시는 환자의 쾌유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과 겹쳐지며 내 안에서 점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자서전을 남기는 사람들


나는 가끔 자서전을 읽는다. 우연히 자서전을 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을 글로 남긴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서전을 남겼거나 남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가 존경심을 느낀 것은 최근이다. 과거의 나는 그들을 약간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내 인생은 기록될 만하다'는 자신감 또한 덜어 내야 할 세속적 욕망이라고 여겼던 탓이다.

그러나 요즘 와서는 전문 글쟁이들이야말로 가장 욕망적(비록 정신적 욕망일지라도)인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알리고, 직간접적으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논조로 바깥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 욕망을 위해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선생도 글감이 되는가 하면, 엄연한 사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가끔은 어떤 글의 적나라한 소재가 된 사람이 분을 못 이겨 펑펑 우는 모습을 볼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데는 아무런 반감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타인들이 성찰하는 데에는 인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에 부정적으로 거론된 사람이라면, 분명 기분이 무척 나쁠 것이다. 비록 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라도 영영 자신의 이미지를 바로잡을 수가 없으니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더 억울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의 평가가 글쓴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점으로 봐서, 사람의 가치는 관계 맺는 대상과 상황에 달렸으니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도록 내성을 길러야겠다.


연애시를 쓰는 시인들


시를 쓰는 내가 읽기엔 상투적이고 진부한 시가 보통 사람들에겐 더 감동적인 것 같다. 인간이 가장 돋보일 때는 사랑하는 바로 그 순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모든 연애시는 언어의 예술성과는 다른 차원, 다시 말해 정신 차리고 보면 약간은 낯뜨거운 감성에 기대어 쓰여진다.

그들은 자신의 연애 감정이 타인의 멜랑콜리한 정서를 건드려 쉽게 공감된다는 사실을 교활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가끔은 ‘어떻게 그 사람이 이런 시를 썼을까?' 싶을 만큼 말초적 신경만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시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별다른 노력 없이 연애의 상승효과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종합병원의 소아 암병동에 갔을 때였다. 내가 찾아갔던 아이는 뇌종양으로 힘든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여든의 노인이 그 아이를 간병하는 안팎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아이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병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는 한 편의 시를 보았다.  

그 시를 쓴 시인은 일반인에게는 너무도 잘 알려졌으나, 전문 글쟁이들에게는 ‘사랑'을 남발하며 독자들의 말초신경만 건드리는 흔하디흔한 글쟁이에 불과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슬슬 쓰다듬는 것 같은 그의 시를 읽고 있자니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졌고, 처음으로 그가 쓴 시로부터 강한 울림을 받았다. 그 시는 환자의 쾌유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과 겹쳐지며 내 안에서 점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시인들도 가끔은 연애시를 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규원이라는 시인을 좋아하는데, 시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생 지치지 않고 추구해 온 그의 시정신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치열한 시적 탐구과정을 통해 얻은 훌륭한 시가 많건만,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애송되고 있는 시는 뜻밖에도 그의 시적 업적과는 거리가 먼 연애시이다. 이 같은 연애의 감정이 없었다면, 그는 딱딱한 정신을 가진 이상주의자밖에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 잎의 여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래서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최선을 다한 삶이 주는 울림


화가가 그린 자기 자신의 자화상도 일종의 자서전이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라, 고흐나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통해 느껴지는 자전적 메시지보다 강렬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오규원 시인도 살아서 자서전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을 따로 모아 책을 냈을 정도로 시인으로서 제대로 평가받고자 욕망했던 것이다. 살아서 이미 명성을 날린 사람들은 훗날 타인이 쓰는 ‘평전'을 통해 삶이 재조명되기도 하지만, 평범한 우리에게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은 저자의 육성이 녹아 있고 감정의 굴곡이 그대로 전해지는 글이 아닐까 한다.

요즘 내가 읽는 책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의 저자(칼 포퍼)가 쓴 자서전( <끝없는 탐구)> 이다. 그의 글은 ‘나는 인간이다'와 같은 명징한 명제에 안도하는 빈약한 우리의 사고 패턴을 역설적으로 지적하며 점점 반증적 검증 요소(입증적 검증 요소가 아니다)가 많아지는 현실에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그는 이성과 분별력이 지닌 최고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비판에 열려 있음이라고 강조한다. 이제야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서전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길 만큼 열심히 살아 보기나 해야겠다고 자각한다.
 


- 글

조은 / 시인.
시집으로 <무덤을 맴도는 이유>ㆍ<따뜻한 흙>이 있으며, 산문집 <벼랑에 살다>, 장편동화 <햇볕 따뜻한 집>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