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CSR 전략 ‘이제는 착한 비즈니스가 살 길이다’ | |
CSR에도 전략이 필요한가? 대답은 물론 ‘그렇다'이다. 국내 기업들의 CSR 활동 지출액의 상당 부분이 기부금으로 쓰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글로벌 기업의 경우 기업 이미지에 걸맞은 한두 가지 활동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다. 이제 CSR에도 전략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기업 마케팅 활동의 한 축으로 CSR을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을 만나 본다.
UN,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ISO(국제표준화기구) 등의 국제기구들이 CSR 관련 지침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CSR 열풍'의 원인 중 하나다. ISO는 2010년부터 ‘기업의 포괄적인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기준 ‘ISO 26000'을 제정할 예정이다. ‘ISO 26000'이 제정되면 원만한 노사관계, 인권, 환경보호, 지역사회 공헌 등에 무심한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소니가 CSR 경영을 납품업체에까지 확장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4,000여 개의 소니 하청업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CSR 협약서'에 도장을 찍어야만 물건을 납품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도 CSR에 신경 써야 한다. 미국의 경우 전체 펀드 조성 금액의 15%인 2조 2,900억 달러가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책임 펀드'다.
전문가들은 많은 국내 기업들이 CSR을 기부나 자선활동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경련이 지난 해 말 발간한 <2006년 사회공헌활동 백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이 2006년 지출한 CSR과 관련된 비용은 세후 이익의 3.4%에 해당하는 1조 8,000억 원에 달한다. CSR 예산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나 일본 기업 이상이다. 문제는 투자비용 대비 효율이다. 많은 돈을 쓰기는 하지만 기업 이미지를 높이지는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속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기업호감지수(CFI:Corporate Favorite Index)가 이를 증명한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에 골고루 예산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CSR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6년 통계를 보면 기업 CSR 지출액의 56.7%가 기부금이며 지출 분야도 학술, 문화예술, 체육, 사회복지 등에 편중돼 있다. 착한 일을 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기업이 투자를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은 기업의 이미지에 걸맞은 한두 가지 CSR 활동에 예산을 집중한다. 미래의 잠재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CSR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화이자(Pfizer)는 1998년부터 에드나 메코넬 클라크 재단(Edna McConnel Clark Foundation)과 함께 저개발 국가 트라코마(과립성 결막염)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제약회사의 이미지에 맞는 CSR 프로그램을 구축해야만 소비자들에게 보다 강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잠재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도 숨어 있다. 코카콜라는 주력 제품의 이미지에 맞는 ‘물 사용' 및 ‘하천 보호'와 관련된 CSR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마존 등 세계 4대 하천의 오염을 줄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가 기업 이미지와 연계한 CSR 활동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는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7개 국에 IT센터를 운영하며 정보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에게 IT와 관련된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CSR 활동이 단기적으로 회사 수익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은 편견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사회에 기여하면서 수익도 높일 수 있는 ‘CSR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유의 여신상 복구운동'이 대표적인 CSR 마케팅이다. 이 회사는 카드 사용금액 중 일정액을 손상된 자유의 여신상을 복구하는 데 사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이 캠페인으로 아멕스카드 사용률은 27% 증가했고 신규 카드 발행률도 10%나 상승되었다. 특정 고객층을 겨냥한 사회공헌활동도 CSR 마케팅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앨리브(Aleve)라는 진통제로 유명한 바이엘사는 잠재 소비자인 관절염 환자들을 CSR 타깃으로 삼았다. 이 회사는 우선 관절염재단과 손을 잡고 ‘관절염환자 걷기대회' 등을 후원했다. 자사의 TV 광고에는 ‘관절염환자 걷기대회' 홍보 문안도 삽입했다. 제품 포장지에 붙어 있는 상표를 떼어 우편으로 우송하면 관절염재단이 발간한 자료를 무료로 보내 주는 이벤트도 벌였다. 업계에서는 바이엘사가 독특한 CSR 활동으로 7,000만 명 이상의 관절염 환자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랑받는 기업'은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대학 교수가 만든 용어다. 사랑받는 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고객과 직원, 주주, 협력사, 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고루 이익을 얻는데 역점을 둔다. CSR의 개념을 협력업체, 투자자, 고객, 종업원 등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 같은 경영 방식은 기업에 손해를 끼칠 것 같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시소디어 교수는 구글, BMW, 사우스웨스트항공, 아마존, 이베이, 코스트코, 할리데이비슨, 홀푸드 등 28개사를 ‘사랑받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이들 기업의 최근 10년간 수익률은 평균 1,100%.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S&P500 지수를 산정하기 위해 정한 미국 500대 우량 기업의 평균보다 8배나 높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고를 때 어떤 기업이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를 숙고한 다음 물건을 고른다는 것이 시소디어 교수의 해석이다. ‘사랑받는 기업'으로 꼽힌 코스트코나 홀푸드는 직원과 고객을 겨냥한 넓은 의미의 CSR 활동을 벌이고 있다. 코스트코는 의약품 마진율을 40%까지 높인 다른 할인점들과 달리 마진율 상한선을 20%로 유지해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을 확보했다. 홀푸드는 스톡옵션의 95%를 경영자나 고위 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에게 부여하는 방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이직률을 낮췄다. 올해 연말부터 국내 기업에도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평가 순위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평가 순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제 CSR 활동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보다 전략적인 기업 CSR 활동을 기대해 본다. ◆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란 = 기업이 투자자와 주주에 대한 경제적 책임이나 법적 책임을 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업의 경영 방침이 윤리적인지, 제품 생산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거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이 없는지, 지역사회와 국가에 얼마만큼 공헌하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포괄한다. - 송형석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