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31. 12:36

인문학, 노숙인의 인생까지 바꾸다.

인문학, 노숙인의 인생까지 바꾸다.

지난 2월 노숙인 인문학 과정 3기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노숙인 인문학 과정은 노숙인의 황폐한 정신을 치유함으로써 그들이 다시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취지로 개설된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빵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인문학이 노숙인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요? 게다가 재소자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도 있다고 하는데 말이죠. 인문학이 가진 힘은 대체 무엇일까요? 


"인문학? 그거 배우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밤 10시, 서울역 지하보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익숙한 서울역의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습니다. 갈아 끼운 지 100년도 더 된 듯한 어두운 황색 불빛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지어 서있었습니다. 한 자선단체에서 주는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인들이었습니다.

취재차 간 그곳에서 저는 ‘노숙인다시서기센터'가 운영하는 인문학 과정인 성프란시스대학 수강생을 모집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함께한 간사가 이곳저곳을 누비는 동안 저는 몇 분 가량 꼼짝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장면에 당황한 탓도 있지만 노숙인들의 황량한 얼굴과 무람없는 몸짓에서 뿜어 나오는 무기력한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다는 이유가 더 컸습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노숙인들의 반응은 꽤 다양했습니다. 관심 없다며 손을 휘휘 내젓는 사람도 있었고, “인문학? 그거 배우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라며 버럭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노숙인 100여 명 중 전단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신기했던 건 그 10여 명의 눈에선 뭔가 다른 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뭔가 다른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며칠 뒤 성프란시스대학 면접 전형에 참관하며 알게 됐습니다. 그분들의 눈에 맺혀 있던 건 희망이었습니다. 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그분들은 “아무런 목표도 없이 살아왔지만, 인문학 공부는 남은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다”고 대답했습니다. 13년 전 미국의 빈민교육활동가 얼 쇼리스(Earl Shorris)가 노숙인ㆍ재소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했던 건 바로 이런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1995년 미국의 빈민교육활동가 얼 쇼리스는 노숙인ㆍ재소자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시작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클레멘트 코스,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가 되다

클레멘트 코스는 1995년 뉴욕 맨해튼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강의가 열린 건물명을 따 이름을 지었답니다. 죄수와 마약중독자ㆍ에이즈감염자 등 마이너리티를 대상으로 철학ㆍ역사학 등을 가르쳤는데, 첫 강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참여자 31명 가운데 17명이 강의를 수료했고,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전일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일자리를 못 얻은 1명은 원래 맥도날드에 취직했지만, 노조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해고당했다고 합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ㆍ멕시코ㆍ오스트레일리아 등 4개 대륙 6개 나라에서 57개의 클레멘트 코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아이가 딸린 홈리스 여성에게, 가나에서는 1년의 절반을 떠돌며 유목생활을 하는 하우사족에게 인문학 강의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문학뿐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마이너리티를 대상으로 강좌를 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 운동입니다. 이것은 경제학자 호세 아토니오 아브레우가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당시 베네수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폭력과 마약에 빠져드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시작한 일종의 방과후 음악활동입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비율이 크게 줄어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2개뿐이던 오케스트라는 135개로 크게 늘었고 엘 시스테마에서 배출된 연주자들로만 꾸려진 ‘시몬 볼리바 유스 오케스트라'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노숙인 대상 인문학 과정인 성프란시스대학의 3기 졸업식.
가족과 연락도 끊고 살았던 노숙인들은 인문학을 배우면서
가족을 다시 만나고 잃었던 삶의 의욕도 되찾았다.

우리나라에서는 3~4년 전부터 마이너리티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들이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시작은 2005년 다시서기센터의 성프란시스대학입니다. 1기 21명 중 14명, 2기 20명 중 13명이 강좌를 끝까지 마쳤습니다. 대부분 가족과 연락을 재개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여성성공센터 W-ing(www.w-ing.or.kr)은 성매매 피해여성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1기 수료 인원은 15명으로, 모두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인권실천시민연대(www.hrights.or.kr)는 지난해부터 교도소에 구금 중인 재소자를 대상으로 ‘평화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배우다

일견 노숙인이나 재소자의 사회적 재활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인문학이 왜 그들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꿔 놓는 것일까요? 요즘의 인문학은 자연과학이나 경영학 등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해 오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학계를 중심으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고 간 게 벌써 오래전 일 아니었던가요?

이런 질문에 대해 제가 내놓는 대답은 위에서 언급했던 ‘희망'입니다. 인문학은 사회의 소수자로 강파르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지금까지의 그들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힘을 길러 줍니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성찰의 학문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속해 있는 사회는 어떤 곳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희망의 다른 이름은 욕망입니다. 인문학을 통해 사람들은 ‘어떻게 욕망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이죠. 돈, 주상복합 아파트, 건강 등등 욕망의 대상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요즘 세상에서 자신이 진짜로 욕망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나의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욕망은 마치 밀림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수풀과도 같습니다. 어지러이 얽혀 있어 길을 찾을 수 없게 합니다. 무한한 욕망의 밀림에서 헤매고 있을 때 수풀을 쳐내고 길을 내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할까요. 인문학을 배우며 사람들은 인생의 길을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아갈 힘이, 인문학을 통해 생긴 거지요.

 

 인문학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길러 줍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문득 깨우치게 합니다.


인문학은 위기의 학문이 아니라 희망의 학문이었다

그런 제 추측은 기사를 쓰기 위해 성프란시스대학 2기 졸업생들을 인터뷰하며 굳어졌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어떤 부분이 자신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서 추진한 인터뷰였는데요. 노숙 생활을 했던 과거가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인터뷰를 거절할 거란 제 예상과 달리 이분들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셨습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진중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화 중간 중간 공자나 마르크스 등 유명한 철학자들의 예를 드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노숙을 하면서 가족들과 연락도 끊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았다는 허문종 씨는 성프란시스대학 2기를 수료한 뒤 방송통신대 입학을 앞두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는 “철학 수업에서 동료들과 토론을 하며 인생을 다른 각도로 보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는 회한밖에 없지만, 이제 미래에 대한 생각이 채워지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서서히 든다고 했습니다. 노숙인 출신으로 직업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옛날처럼 쉽사리 포기하고 인생을 낭비하진 않겠다는 것이 허문종 씨의 다짐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인문학 특유의 ‘성찰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인문학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외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글

김민희 / 서울신문 기획탐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