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31. 12:37

서울대, 인문학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게 된 이유는?

서울대, 인문학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게 된 이유는?

우리가 공부를 하고 직장을 다니고 저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고 우정을 쌓고 사랑을 하는 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문학이야말로 '행복론'이라고 설파하는, 그래서 2008년 1학기부터 학생들에게 '행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서울대 김창민 교수의 얘기에 잠깐 귀를 기울여 보자. 


쉴 틈 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학생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요즘 직장인은 대부분 일에 쫓기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잠시도 여유가 없지요. 학교도 마찬가집니다. 남들은 교수가 편하다지만 저도 매일 쫓기듯 살아갑니다. 대학생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핵심교양 수업을 하나 맡고 있습니다. 매 학기 첫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꽉 짜인 수업 일정을 알려 줍니다. 많은 과제를 부과하고, 쪽지시험ㆍ기말고사ㆍ평가방법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때마다 열심히 듣고 있는 수강생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대견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게다가 신입생들이면 제 마음은 더욱 편하지 못합니다.

서울대에 오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충분히 잠도 못 자고, 친구들과 맘껏 놀지도 못한 학생들인데….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글로벌 경쟁력'을 운운하면서 또 쉴 틈 없이 경쟁으로 내몰립니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내가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비인본적인 신자유주의에 대항에 싸우는 혁명가가 되라고 할까? 하지만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대로 인본주의적 경제제도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규모도 안 되고…. 무력감과 자괴감만 더 느꼈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에 시달리는 학생들.
하지만 대학에 가도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무한경쟁이다.


행복도 자전거 타기처럼 배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2006년 어느 날 저의 관심을 끈 기사가 있었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 강사 벤-샤하르의 '행복학' 강의가 최고 인기 강좌로 떠올랐다는 겁니다. 수업시간에는 '8시간 이상 수면하기'를 과제로 내주기도 하고, 수업 도중에 조명을 낮추고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강의는 과제와 시험으로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하버드 공부벌레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에 ‘행복학' 대학원 과정이 설치된다는 기사를 또 보았습니다. 확인해 보니 공식적인 이름은 ‘응용긍정심리학(Applied Positive Psychology) 석사 과정'이었습니다. ‘긍정심리학'을 중심으로 행복지수를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행복전문가' 과정이었습니다.

미국의 ‘행복학'은 최근 심리학의 한 흐름인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 1998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불안ㆍ우울ㆍ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 개인의 강점과 미덕 등 긍정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심리학의 새로운 갈래지요.

‘긍정심리학'에서는 행복은 바이올린 연주나 자전거 타기처럼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합니다. 행복은 막연한 주관적 느낌이나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이며 측정 가능한 것이기에, 행복은 연습에 따라서 얼마든지 배우고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 개설된 '행복학' 강좌는,
많은 과제와 시험으로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앞에 소개한 두 기사는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평소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면서 자괴감과 무력감의 터널을 지나오던 저에겐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그 무렵 우리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 전공을 의무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습니다.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학제간(學際間) 연계전공의 개발을 권장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행복학' 연계전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기엔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행복학개론 차원에서 '동서양 고전과 행복론'이라는 한 강좌를 개설해 보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었지요.


가르치고 토론할수록 인문학이 '행복학'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이 인문대학이니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행복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우선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동서양의 문학과 종교ㆍ철학에서는 무엇이 행복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지 확인하고 정리해 보자는 거죠.

예를 들어 불교ㆍ기독교ㆍ유교에서 이야기하는 행복론이 서로 어떻게 연관이 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학생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각 언어권별 문학작품과 문호들은 무엇이 행복이라고 했는지도 알아보는 거죠. 나아가서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이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드는지 직접 체험해 보는 기회도 갖고, 심리학과 뇌과학에서 발견한 ‘행복론'을 학생들에게 소개도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업시간마다 해당 분야의 전공교수를 초빙해서 짧은 강의를 듣고 난 뒤, 강의를 공동 진행하는 교수와 강사, 수강생 사이의 토론으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주제ㆍ새로운 형식의 수업이기에 참여자 모두 즐겁습니다. 한두 시간씩 강의를 부탁받은 교수님들도 기꺼이 응해 주시고요. 행복이라는 화두로 해당 전공 분야의 지식들을 되돌아보고 꿰어 보는 작업이라서, 생소해 하면서도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수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인문학은 곧 행복학이다!'라는 생각이 점점 더 뚜렷해졌습니다. 인문학 자체가 인간의 행복을 모색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이든, 보편적 선(善)의 추구이든, 그것은 결국 넓은 의미에서 개인적ㆍ집단적 행복의 추구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불경과 성경은 행복론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고, 공자의 <논어>도 첫머리에 바로 ‘행복[樂]'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입니다. <논어>는 첫 장(學而第一)에서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라는 것으로, 먼저 정신적 풍요와 마음의 수양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인간관계, 부와 명예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를 통해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정신적 풍요를 강조했던 동서양 고전을 통해
물질문명이 초래한 정신적 황폐화를 개선하기 위한 것,
그것이 서울대에 '동서양 고전과 행복론'이라는 강의를 개설한 이유다.

현대의 행복론으로도 손색이 없는 가르침입니다.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도 뒤집어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최선의 길인지 말해 주는 역설적 행복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서양 고전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정신적 풍요를 통한 행복론입니다

행복론 강의는 물질문명이 초래하는 정신적 황폐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동서양 고전과 현인들은 물질적 욕망을 버리고 정신적 풍요를 누리라고 가르칩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성경에서는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 것이라 했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혁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남에게 베풀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이죠.

황금만능주의 사회풍조 속에서는 상대적 박탈감ㆍ빈곤감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미국에서는 1945에서 2000년 사이에 실질 국민소득이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하락했습니다. 그 시기 동안 이혼율은 2배, 10대 자살률 3배, 폭력범죄 4배, 죄수 5배, 미혼모 신생아 비율 6배, 우울증은 10배가 늘었습니다. 독일과 일본 같은 선진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추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괄목할 경제적 성장은 이룩했어도 저출산ㆍ자살률ㆍ이혼율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와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사랑ㆍ명예ㆍ희생정신ㆍ신의)들이 대부분 상실된 사회지요. 다양한 가치와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을지 몰라도,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면서 우리의 정신은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때 개인과 사회 모두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경쟁력과 성장입니다. 대중매체, 특히 TV는 지나친 물욕과 가치의 획일화를 조장합니다. 선진국의 예에서 보지만, 경제 성장이나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인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소한의 생계와 건강은 행복의 필수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물질적 풍요와 행복은 별개의 것입니다. 정신적ㆍ문화적으로 빈곤한 사회는 행복은커녕 지속적인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들이 물질적 풍요 못지않게 정신적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믿습니다.


- 글

김창민 /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