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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 08:16

위기를 극복한 기업가 1

[위기를 극복한 기업가] 강철왕 카네기, 그에게 위기는 도약의 무대였다

역사를 통해 위대한 기업가로 평가받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시련과 고통에 침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기회 삼아 더 높은 도약을 했다는 것.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앤드류 카네기다. 고향 스코틀랜드를 등지고 새롭게 정착한 미국 사회는 그에게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창의적인 경영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넘어 세계의 '강철왕'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카네기를 찾는 이유는, 불확실성 시대의 삶을 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또 기업인들에게 그가 하나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위대한 인간으로의 승리, 미국의 대부호 카네기

'강철왕'으로 불리는 앤드류 카네기(1835.11.25~1919.8.11)는 세계 경영사에 찬란히 빛난 북극성이자 전설로 통한다. 그는 인생의 역경들을 극복하고 미국의 철강산업을 발전시킴으로써 미국을 세계 최강의 슈퍼파워로 만드는 기반을 닦았다.

또한 자선사업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함으로써 기업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1835년 유럽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베틀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는 1848년 가족과 함께 미국 피츠버그로 이민을 가 면직물 공장 공원, 전보 배달원, 전신기사로 일하다가 펜실베이니아철도회사에 입사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데다 이재에도 밝아 고속승진을 거듭하던 카네기는, 미래에는 철과 강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하여 1865년 철도회사를 나와 키스톤브리지 사를 설립ㆍ경영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친 끝에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를 일궈 냈다.

카네기는, 남북전쟁 후 격변기를 보내던 미국 사회와 경제의 변화 흐름에 적응하면서 성공을 거둔 전반기와, 평생 '악덕기업주' 꼬리표를 달게 된 홈스테드 파업 사건 이후 자선사업에 헌신한 후반기를 통해 84년에 걸친 인생의 씨줄과 날줄을 튼실하게 엮었다.

강철왕 카네기.
그는 경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철강산업이 세계 최고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닦았으며,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자선사업을 통해 기업의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 (사진 : 연합뉴스)

 

 창조경영과 과감한 합병으로 성공가도 질주

세계경제와 미국경제가 격변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기업 경영자들은 고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카네기는 기업가로서 맞은 이 첫 번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미국경제는 남북전쟁(1861~1865) 이후 제조업 발전의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었고, 철과 전력의 활용과 함께 과학의 발전 및 잇따른 발명 등 다양한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였다. 1860년 이전에 미국 내 특허권 인정은 3만 6,000건이었으나, 1890년까지 30년 동안에 44만 건의 특허권이 부여될 정도로 급성장을 거듭했다.

전신, 전화, 타자기, 계산기, 현금출납기, 자동식자기, 백열등, 축음기 등이 속속 발명됐고, 동시에 미국의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은 고율의 관세 보호를 받고 성장을 지속했다.

카네기는 급변하는 경제상황 속에 제조비용을 줄이고 능률을 높이는 세부 생산비용 회계처리 방식과 미국 제철업계 최초로 염기성 평로를 도입한 데 이어, 철강 원료를 제공하는 코크스 광산과 철 광산뿐 아니라 원료품들을 공장으로 수송할 배와 철도를 구입해 생산성을 높였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철강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고효율의 관세 보호를 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때 카네기는 경영방식을 과감히 개선하는 한편, 광산을 사들이고 배와 철도를 구입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거침없는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적절한 시점에 투자에 성공했고, 발상의 전환과 창의적인 경영으로 다른 경영자들이 고전할 때 거침없이 사업 확장을 강행하여 결국 세계 철강계를 제패했던 것이다.

이같은 수직적 결합은 훗날 독점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당시로서는 최첨단에 속하는 대단한 경영 수완이었고 결국 미국 제조업계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 강철왕은 이렇게 탄생했고, 세계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게 되었다.


노조 탄압 악명 딛고 자선사업으로 기업사의 새 장 개척

두 번째 위기는 바로 미국경제 사상 최악의 노동파업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홈스테드 파업이었다. 1872년 미국 최대의 카네기 철강회사 홈스테드 제강소를 세웠던 카네기는 4,000명의 비숙련 노동자들을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씩 혹독하게 일을 시키고 일주일에 9달러만을 줬다. 그러나 그는 평상시 노동자들과 친숙하게 지낸 원만한 성격 탓에 그다지 나쁜 평가는 받지 않았다.

사건은 1892년 6월 카네기 철강회사가 잇따른 인수합병으로 경쟁업체가 사라지고 큰 폭의 이익을 냄에 따라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노조파괴 전문가로 불린 동업자 헨리 클레이 프릭은 미국 노동총연맹(AFL) 산하의 금속ㆍ주석 노조의 지원을 받는 노조파괴 계획을 세운 뒤 카네기와 협의 끝에 오히려 임금 삭감을 단행, 노조측을 자극했다.

프릭은 7월 초 공장폐쇄와 함께 공장 주변 3마일에 가시 철조망을 치고, 300명의 사설 경비원을 고용해 공장을 요새화시켰다. 분노한 노동자의 공세와 시민들의 합세로 사설 경비원들이 노동자들에게 포위되자, 프릭은 공권력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협상을 끝까지 거부했다.

결국 파업 95일 만인 10월 13일 주지사 로버트 패티슨이 8,000명의 군대를 파견했고, 전투를 방불케 하는 유혈충돌 과정에서 10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프릭이 노동자들을 향해 실탄 사격을 지시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악화됐던 사태는 결국 군에 의해 강제 진압됐다. 프릭의 노조 탄압에 동조했던 카네기는 이후 노동조합을 해산시켰고 미국 철강 분야의 노동운동은 이후 쇠퇴를 거듭했다.

이후 카네기 철강회사는 1900년에는 생산량이 설립 당시보다 10배로 늘었고 매출은 20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 철강산업의 4분의 1을 차지한 카네기가 생산하는 철강의 양은 1890년에 벌써 당시 세계 최강국인 영국 전체에서 생산되는 철강량을 능가했다.

결국 노조 해산에 성공하고 기업경영은 순조로웠으나 카네기는 이후 악덕 자본가의 표상으로 꼽히게 됐고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손가락질과 수근거림을 감내해야 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데 대해 고민을 거듭하던 카네기는 이후 자선사업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그는 54세 때인 1889년 한 잡지에 기고한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이라는 기고문에서 "재산을 안고 지구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는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한다"며 부의 사회환원이 부자의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했다.

결국 그는 1901년 회사를 JP모건의 유나이티드스테이츠철강회사에 2억 5,000만 달러에 매각하고 경영현장에서 은퇴한 채 자선사업에 전력하며 '제2의 인생'을 개척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영어권 국가에 수많은 공공도서관을 설립하기 위해 기부금을 내놓았고, 1900년 카네기멜론대학교 내 카네기 공과대학, 1902년 워싱턴 카네기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앨라배마 주 터스키기 연구소를 적극 후원했다.

 가난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소년은 마침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하고 누구보다
부러울 것 없는 철강왕이 되었고, 그가 가진 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인간이 되었다. 사진은 한 철강회사 공장.
 

그가 1911년 설립한 뉴욕 카네기재단은 거액을 들여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등지에 2,500개의 도서관을 건립, 지역사회의 구심적 역할과 함께 세계 문화의 부흥에 기여토록 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카네기의 경영 행보는, 전쟁터처럼 치열한 기업 경쟁의 현장에서 위기에 매몰되거나 침몰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창의적인 해법을 꾸준하게 추구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경영 수완과 무한한 창의력을 가진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나누어 주는 방법과 기술도 창안해 내야 한다.

만약 그들이 가난이 무엇인지 안다면 경험에 의해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므로 가난한 자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 며 다른 기업인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방식으로 기업인들의 사회적 역할에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 Good To Great > 의 저자인 짐 콜린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위대한 기업'의 4대 조건으로 성과(Performance), 영향력(Impact), 명성(Reputation), 지속성(Longevity)을 들었다.

카네기가 꾸준히 발상의 전환과 창의적 노력을 기울였기에 미국의 철강업은 오랜 기간 세계를 제패했고, 콜린스의 지적처럼 그의 자선활동으로 미국 기업들은 악덕기업에서 선행을 베푸는 기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위기와 과오를 또 다른 도약과 기회의 무대로 만들어 낸 카네기의 인생은 그래서 다시 되돌아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 글

김홍국 / 뉴시스 정치부장, <미국의 거장들> , <세계건축가 100인 한국건축가 100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