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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4. 09:13

진화하는 네트워크에서 스스로 허브가 되어라 - 셋

[나의 확장] ③진화하는 네트워크에서 스스로 허브가 되어라

1992년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킴 베이싱어는 영화 <원초적 본능>의 주인공 캐스팅 제의를 거절했다. “너무 난잡해서 인기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샤론 스톤은 일약 세계 최고의 섹시스타로 발돋움했다.

성공과 실패는 어이없이 엇갈릴 때가 많다. 눈에 빤히 보이는 것 같아도 성공은 신기루처럼 멀리 달아난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이다. 그것이 역전을 가능케 하는 이유다. 중심과 변방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이야기, 정말 명언이다.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라
 

지금 당신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노력에 비해 지독하게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탄하는가. 그러한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관계와 네트워크, 그 속에 한 점으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역동성을 떠올려 보라.

자신이 꿈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의 틈새'를 파고 들어야 한다. 그 길이 장사를 하는 사람에겐 틈새시장일 수 있고, 큰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에겐 블루오션일 수도 있다. 자신을 옥죄고 있는 네트워크를 탈출하려면, 아니 스스로의 힘으로 찢어 버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고통이다. 고통을 회피하면 영원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고통의 본질은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자신감 결여다. 노력해도 안 될 수 있다는 절망감이다. 이 모든 고통은 일차적으로 탐색과 학습부진에서 야기된다.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스스로 각성하지 못하는 인간은 항상 안일한 일상의 만족감에 젖어있다. 이미 학습한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통은 자초하는 것이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지의 세계를 향해 자신을 던지고 도전할 수 있다.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라

네트워크는 결코 평면적이지 않다. 균형 잡힌 질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내에는 ‘허브(hub)'가 존재한다. 소규모 동창회 조직에도 연락과 모임의 중심역할을 하는, 소위 ‘마당발'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이 허브다. 허브는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중심이다. 우리 몸으로 치면 물 분자나 가수분해를 이용해 에너지를 방출하는 ATP(아데노신 3인산)처럼 신체 내 어떤 화학반응에도 작용하는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것이다.

항상 1만기 이상의 항공기가 하늘에 떠 있는 미국으로 치면 시카고, 댈러스, 덴버, 애틀란타, 뉴욕 같은 곳이 허브 공항이다. 허브의 존재는 곧 네트워크에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물질이 공간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면 별이나 생명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문화 역시 시간과 공간이 갖고 있는 불균형의 산물이다. 거꾸로 말해 완벽한 균형은 더 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세계는 없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 속에 어떤 허브들이 명멸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법과 제도, 사회구조 역시 이런 명멸 속에서 변화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노력의 방향이 허브의 이동축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다면 뜻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흐름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사법시험 제도만 해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었는가. 합격의 가치만 놓고 보면 과거 100명, 300명씩 합격자를 배출하던 시절과 1,000여 명을 뽑으며 개방형 로스쿨 제도까지 도입한 요즘을 비교할 수는 없다. 판·검사가 위세를 부리던 옛날을 기억하는 시골 노인들은 여전히 손자들에게 사법시험에 도전하라고 권할 것이다. 하지만 손자들의 눈에는 판·검사보다 더 즐거운 일자리들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충분히 노력했는가

물론 허브의 중심축을 향해 끊임없이 돌진하는 것만이 성공적인 인생에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자신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지만 동시에 윤리적 존재이기도 한 까닭이다. 허브의 바깥에는 소외되고 배제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 자체로 불균형이기도 한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도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삶의 양태를 만들기 위해 소외와 결핍의 네트워크에 구멍을 뚫는 이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인권, 환경, 평화 등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 구현에 인생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허브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자기기만적인 노력은 곤란하다. 대부분의 ‘노력가'들이 중도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자신이 바친 시간과 노력이 충분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노력의 방향, 즉 삶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는 좀처럼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예를 들어보자. 사법시험 합격을 위해 단순히 공부시간만 늘리면 되는가. 출제경향과 법조계의 고민, 관련 서적들에 대한 탐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합격한 사람은 물론 낙방한 사람들의 경험담도 들어야 한다. 진정한 혁신은 자기 기만을 깨부수는 데서 시작된다.


변방에 머물 것인가, 스스로 허브가 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세상은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고 학습해야 할 영역은 바다처럼 넓고 겨울 산맥의 골짜기처럼 깊다. 주민등록번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이 열세 개의 번호를 갖고 있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주민등록번호는 그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과거 그런 번호가 없던 시대도 있었다. 언제 누가 어떤 이유로 그런 제도를 만들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현대사회의 네트워크를 학습하는 중요한 출발이다. 나아가 인간을 규율해 왔던 과거와 현재의 네트워크, 앞으로 출현하게 될 새로운 네트워크의 양상을 통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160억 년 전에 탄생한 우주는 무수한 항성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장대한 물질 진화를 이룩했다. 그 결과가 태양계의 한 혹성인 지구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또 다시 수십억 년의 진화 프로세스를 통해 인간을 낳았고, 그 인간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 낸 것이 온갖 네트워크의 집약체인 현대문명이다. 이 네트워크는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감히 그 종착역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네트워크의 허브라는 자리는 복잡하게 변화해 나가는 환경에서 새로운 변이를 창출하고 정보와 지식과 영감을 모으고 축적한다. 이들은 언제나 인간사회를 움직여 나가는 공간이었으며 하부 관계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무너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진화를 거듭해 왔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때의 허브가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한때의 변방이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치고 올라가는 양상은 더욱 빈번해지고 때로는 격렬해질 것이다. 스스로 허브가 되겠다고 생각하라.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실제 허브가 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허브만 쳐다보며 변방에서 살아간다는 것 또한 끔찍하지 않은가.


- 조일훈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