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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5. 16:52

경제위기, 세계 공존의 도화선으로 삼을 수 있을까 - 셋

[석학에게 묻다] ③경제위기, 세계 공존의 도화선으로 삼을 수 있을까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금융위기는 실물 부문으로 전이되면서 짧은 기간 내 세계 경제를 침체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국제금융기구나 경제 석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 경제의 위기가 오래 지속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갖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 자체도 중요하지만, 국제 정세 변화의 흐름을 함께 읽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국제 정세를 알기 위해서는 2009년의 뜨거운 이슈인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방향과 G20 정상회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국제 정세, 공존의 시대 개막

2009년, 미국이 역사 이래 첫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그는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힘의 외교를 내던지겠다고 공언했고, 이는 미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은 국제 정치가 공존의 시대로 들어설 것임을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 정권이 8년간 상징화한 미국의 독주를 반성하며, 세계를 향해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함께 열자고 선언했다. 그는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주변국과의 공조를 요구하며 손을 내밀었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국은 이제 다극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환경을 맞은 셈이다. 테러, 핵 개발·확산, 기후변화, 빈곤, 전염병, 인종 간 갈등 등 국제 정치에서 각국 간 공조를 필요로 하는 현안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제 정치 분야의 석학들은 ‘공조와 협력 그리고 대화'를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에서부터 행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자문역할을 했던 브루킹스연구소의 스트로브 탈벗 소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외 정책 과제는 동맹국들과 공조·협력의 틀을 확대하고 적대국과도 협상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 평화와 공존을 지향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탈벗 소장의 조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념 철학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조지 부시 행정부와 가장 다른 부문은 대외 정책이 될 것”이라며 “오바마 행정부는 이념 논란에 매달리기보다는 한 단계 높은 실용주의에 더 주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앞세워 ‘스마트 파워 외교'라는 새로운 노선을 실천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에서 30여 년간 베테랑 외교관 경험을 가진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포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은 “아무리 현안이 많더라도 동시에 여러 과제를 처리해야 한다”며 “미국 행정부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가졌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극복과 이라크 철군 및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 등 오바마 대통령이 내건 우선 과제에만 빠져 다른 사안을 뒤로 미루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국제 경제 권력의 재편

최근 경제위기 때문에 국제 경제 권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G20 정상회의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금융위기 해법 공조를 위해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처음 열린 G20 정상회의에는 기존 선진국 외에 신흥시장 국가들이 한 축을 차지했다. 올 4월 초 런던으로 이어진 2차 G20 정상회의는 국제 경제 권력에서 G7으로 대표되는 선진국 간의 독점적 지위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G20 회의는 원래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 간의 회동에서 출발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 사회에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마침내 1999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 때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G7 국가 외에 주요 신흥경제국을 참여시키는 G20 창설을 합의했다.

회원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 일곱 개 선진국(G7)에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한국 등 지역별 열두 개 신흥경제국을 끌어들였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의장국이 추가됐다.

 

그동안 국가 간 경제외교와 역학관계에서 선진국들에게 밀린 신흥경제국들의 목소리가 G20의 부상에 비례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런던에서 열린 2차 G20 정상회의는 선진국과 신흥경제국 간의 줄다리기와 힘겨루기 속에서도 여섯 개항의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일단 외형상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일부 국가들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5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이 추가로 약속됐으며, IMF 등 국제기구의 재원을 1조 1,000억 달러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같은 거액이 과연 제대로 모아질 수 있는지, 집행될 것인지에 대한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저런 한계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G2O은 당분간 국가 간 정책 협의체로서 우월적인 위상을 인정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에 대한 기대와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확산된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양날의 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변화와 위기를 준비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이들에게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변화를 한발 앞서 예측하고 거기에 미리 대비하는 지혜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 윤경호 /
매일경제신문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