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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16. 17:17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입니까?


[이승재 기자의 영화로 본 문화 읽기]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평소 꼭 해 보고자 욕망했던 일을 늘 나중으로 미루는 걸까? 왜 우린 죽음이 예견되는 절박한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걸까?

당신에겐 버킷 리스트가 있으신지…. 만약 ‘죽기 전에 꼭 해 봐야지' 하고 심장 속에 숨겨 놓은 소중한 리스트가 있다면,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 보길 바란다. Never too late! 진정한 삶의 기쁨은 지금 발견해야 더 아름다우므로.


유명한 이 한마디를 기억하시는지.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철학자 스피노자가 남긴 이 언명은 진정 ‘쿨(cool)'해 보인다. 나의 죽음이 예견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린 알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어느 날 돌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의사로부터 “애석하게도 딱 6개월 남았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당신은 남은 6개월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겠는가. 이런 난감한 질문에 대해 멋진 대답을 들려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2007년 作)>라는 영화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면 자, 무엇을 할 것인가?

미국 최고의 연기파 백인배우와 흑인배우로 각각 인정받는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공동주연으로 나와 화제가 된 이 영화에는 알고 보면 더 큰 화젯거리가 숨어 있다. 두 배우가 모두 1937년 생, 그러니까 올해로 만 72세 동갑내기란 사실이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난생 처음 만나게 됐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병원을 세워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은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는 평소 인정머리라곤 쥐뿔만큼도 없는 냉혈한이란 평가를 받는 인물. 그가 어느 날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 분)와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사람이 모두 ‘말기 암' 판정을 받으면서 “6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못된 성질머리 탓에 이혼을 네 번이나 하고 난 뒤 지금은 딸과도 의절하고 지내는 에드워드. 앞이 캄캄해진 그가 우연히 옆 병상을 보니 카터가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끼적이고 있는 게 아닌가. 메모를 살펴보니, 카터는 죽기 전에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 즉 ‘버킷 리스트'를 적고 있었던 것! 내용인즉 이랬다.

   ①전혀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②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 보기
   ③아무리 좌절해도 정신병자 되지 않기
   ④뭔가 장엄한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카터의 목록을 훔쳐 본 에드워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 괴팍한 성격만큼이나 독특한 자신만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니, 내용은 이랬다.

   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키스하기
   ②문신하기
   ③스카이 다이빙하기

죽음을 앞두면 그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이 있잖은가. 결국 사회적 지위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그리곤 함께 적은 버킷 리스트를 실행에 옮긴다. 문신을 하고, 스포츠카를 미친 듯이 몰고, 이집트로 가 피라미드를 보면서 ‘뭔가 장엄한 것'을 직접 보고,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 만리장성 위를 질주한다. 이 과정에서 에드워드는 인간의 온기와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과 화해한다. 그리고 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게 된다(특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키스하기'라는 에드워드의 소원이 어떤 기상천외하고도 애틋한 방식으로 이뤄지는지를 꼭 확인해 보시길).

 


죽음을 통해 ‘오늘'의 참 의미를 말해주는 영화

만약 당신이라면 어떨까.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어떻게 정리하고 평가할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할까. 이런 점에서 영화 <버킷 리스트>는 우리에게 진한 공감과 깨달음을 던져 준다.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당신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왔는지, 그래서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있다”면서 이렇게 귀띔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대해 멋진 믿음을 가졌다는 거, 자네 아나? 영혼이 하늘에 가면 말이야, 신(神)이 두 가지 질문을 한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가 결정됐다고 하지.”(카터)
“무슨 질문이었는데?”(에드워드)
“‘너의 인생에서 기쁨을 발견했느냐?'는 질문이지. 자네, 대답해 봐.”(카터)
“물론 기쁨을 찾았지. 두 번째 질문은 뭐야?”(에드워드)
“‘그렇다면 자네 인생도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느냐?'는 질문이야.”(카터)
“….”(에드워드)

이 영화는 사실 ‘죽음'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말해주는 영화다. 왜 우리는 린 평소 우리가 꼭 해 보고자 욕망했던 일을 늘 나중으로 미루는 걸까? 왜 우린 죽음이 예견되는 절박한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걸까?

영화에서 에드워드는 “나이 들어 문신을 하면 사람들한테 바보 취급을 당할 텐데….” 하고 걱정하는 카터에게 이런 짧은 말을 던진다.
“Never too late(너무 늦은 건 없어).”

그렇다. 너무 늦은 건 없다. 그것이 얼마나 늦었건 간에, 지금 당장 하자. 지금 당장 저지르자.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 별처럼 살아 있는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살아생전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Live as if you'll die today(당장 오늘 죽을 것처럼 치열하게 살아라).”

지금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못한다. 일상에 치여 산다는 이유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우린 너무나 중요한 걸 미루면서 산다. 영화에서 카터는 중년의 남편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이런 대사를 고백처럼 남긴다.

“막내가 대학에 가면서 뭔가 내 가슴에 구멍이 뚫린 거 같더라구. 숙제 같은 거 안 해줘도 되고, 애들 공연이나 학교 연극에 안 가도 되고…. 게다가 애들 우는 소리도, 싸우는 소리도 없는데 말이야. 결혼 40년 만에 처음으로 마누라를 조용한 집에서 마주하게 된 거지. 아무런 신경 쓸 일도 없이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어느새 내가 달라져 있더군. 예전엔 항상 와이프 손을 잡고 다녔는데, 이젠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더란 말이야. 내가 사랑했던 바로 그 여잔데,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 그 여잔데…. 그 세월 동안 내가 뭔가를 잃어버렸던 게지.”

진정 옳은 얘기다. 우리 남편들은 어느새 아내의 손을 잡기가 어색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해변에서 걸어가는 중년의 남녀가 있다. 남녀가 부부 사이인지, 아니면 불륜 관계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은 간단하다. 둘이 손잡고 걸으면 불륜, 손을 안 잡으면 십중팔구 ‘법적'인 부부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오늘이라도 아내의 손을 잡고, 나중으로 미뤘던 나의 꿈을 실천해 보자.

 


내일을 기약하지 말자, 지금 오늘 ‘삶의 기쁨'을 발견하자

평소 가깝게 지내는 한 외국계 회사 임원에게 내가 물었다. “당신이 만약 딱 6개월만 더 살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어떤 일을 할 건가요?”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다섯 가지를 마지막으로 하겠어요. 첫째,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큰절을 올립니다. 둘째, 첫사랑이었던 여인을 찾아가 먼발치에서 10분간 쳐다봅니다. 셋째, 결혼한 아이(자녀)들 몰래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 멀리서 지켜보겠습니다. 넷째, 나의 유년을 떠올리게 만드는 꿈의 장소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타임캡슐을 만들어 나에 대한 기록을 그 속에 남기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궁금했다.
“왜 결혼한 아이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나요?”(나)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 아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죠.”(그)
“아, 그렇군요. 그럼 첫사랑 여인마저도 몰래 바라보기만 하는 까닭은 또 뭔가요? 어렵사리 찾았는데 말은 걸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나)
“하하. 첫사랑한테 말을 걸면, 그 순간부턴 죽기가 싫어질 것 아닙니까.”(그)

당신에겐 버킷 리스트가 있으신지…. 만약 ‘죽기 전에 꼭 해 봐야지' 하고 심장 속에 숨겨 놓은 소중한 리스트가 있다면,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 보길 바란다. Never too late! 진정한 삶의 기쁨은 지금 발견해야 더 아름다우므로.


- 이승재 / 동아일보 영화담당기자로 삼성경제연구소 온라인지식서비스 ‘SERI CEO'에서 <대중문화 읽기>를 강의 중이며 저서로 <영화관에서 글쓰기>(2008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