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7.30 숲을 해설하는 일의 즐거움
  2. 2008.07.30 다시 찾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숲
  3. 2008.07.30 숲 이야기
2008. 7. 30. 08:33

숲을 해설하는 일의 즐거움

숲을 해설하는 일의 즐거움, 직접 느껴 보실래요?

'숲'이라는 말은 참 친숙하다. '해설'이란 단어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두 단어를 합쳐 놓은 '숲해설'이란 말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숲을 해설한다고? 왜? 무엇 때문에?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해설가 없이 TV 스포츠 경기를 본다고 가정해 보면 간단히 풀린다. 규칙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스포츠에 관심 좀 가져 볼까 했던 사람들은 따분하고 답답한 마음에 채널을 돌려 버릴 테니 말이다. 숲해설가가 말하는 숲해설의 의미에 귀를 기울여 보자.

 

숲해설, 스페셜?

“산엘 자주 가시나 봐요” 늘 궁금했다며 앞집 엄마가 묻는다. 등산복 차림으로 자주 외출하는 나를 보며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산에 가는 것 같아 좀 이상했나 보다.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혹시 숲해설 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했더니 고개를 갸웃하다가는 “스페셜요?” 한다.
이젠 숲해설에 대해 많이들 알고 있고 특히 아이들은 학교 환경교육 시간이나 체험학습을 통해서 숲에서 직접 자연체험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숲해설가가 뭘 하는 건지 생소해 한다. 그저 나무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수목원과 전국에 있는 자연휴양림, 그리고 서울시나 각 지자체의 중요한 산에 가면 숲해설가가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식물원에도 숲해설가를 두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알다시피 요즘 휴양림은 주말이나 여름 성수기엔 숙소를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대개는 가족단위로 오는데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앞세우고 숲해설을 들으러 나온다. 물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주기를 원한다.

 

 숲해설가를 나무 이름이나 꽃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까 과연?


숲해설가는 잃어버린 감수성을 깨우는 자연안내인이다

얼마 전까지 서산에 있는 휴양림에서 숲해설을 했다. 초여름부터 하얀꽃을 가득 피우는 덩굴성 나무인 사위질빵 앞에서 ‘사위사랑은 장모님'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거나 수종이 다양한 우리나라 숲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어른들이 숲 이야기에 더 빠진다.
아이들은 5분을 집중하기가 힘들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다람쥐라도 나타나면 우루루 그쪽으로 몰려간다. 자연은 학교 교실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을 줄 세울 필요도 없고 얌전히 설명을 잘 들으라고 하는 것도 무리이다. 아이들이 움직이면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된다.
다람쥐가 참나무를 어떻게 번식시키는지, 그래서 참나무는 숲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애벌레들이 번식을 위해서 잎이 연한 봄에 부지런히 갉아먹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고…. 누군가 두릅나무 순이 나오자마자 잘라 갔더니 두릅나무가 화가 나서 금세 가시를 억세게 만드는 모습을 관찰한다거나 하면 아이들은 순수하게 생명체로서의 식물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숲해설은 나무 이름ㆍ야생화 이름을 말해 주거나 곤충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이른 봄, 나무가 잎을 내기 전에 숲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야생화들은 제 할 일을 마쳐야 한다. 그리고는 진달래 같은 떨기나무, 단풍나무 같은 아교목, 그리고 참나무 같은 큰키나무 순으로 꽃을 피우고 잎을 낸다. 자연은 알아서 질서를 지키고 햇빛을 골고루 나누어 쓴다. 탐방객들과 오감을 이용해 관찰하고 생태적 감수성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자연안내인이 바로 숲해설가이다.

 

 숲에서 동식물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나무들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숲해설가의 얘기를 듣다 보면 자연의 질서에 대한 경외감이 생긴다.


숲에 오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스페셜'해진다

지구온난화! 현대를 사는 지구촌 사람들의 가장 큰 화두일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 과도한 화석원료의 사용이라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안다. 생태계의 섬돌 하나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지게 되어 있다. 결국 인간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자연을 보존하는 게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어울려 살아가도록 지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가꾸어야 한다. 다리가 없는 나무가 어떻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지, 어치와 다람쥐가 숲을 어떻게 키우는지 알게 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다 보면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
숲이라는 장소는 누구나 좋아한다. 숲에 가서 나무를 두 팔로 끌어안고 말을 걸면 정말로 나무와 내가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찬찬히 바라보면 나뭇가지에 깃들여 있는 새가 보이고 잎을 갉아먹고 있는 애벌레가 보인다. 발밑의 부드러운 낙엽, 그리고 썩은 나무들은 점차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또 산소가 풍부한 숲의 공기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그런데 이 숲의 주인은 누구일까? 숲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이 숲의 주인이다. 숲은 특히 아이들에게 훌륭한 선생님이다.


숲에서는 사람도 광합성을 한다

무언가 언짢은 일이 있었더라도 숲에 오면 말끔히 씻어지고 새로운 기운을 얻어 간다. 나무처럼 나도 광합성을 하고 에너지를 만들어 돌아가는 것 같다. 탐방객들과 열심히 숲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무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흠뻑 받고 내가 더 즐겁고 행복해진다. 탐방객들이 재미있어 하고 보람을 느끼는 건 덤이다.
덤이 또 있다. 좋은 공기 마시며 많이 움직이니 건강에도 좋다. 나무가 화내는 것, 나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등 나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숲에서 느끼는 감수성이 그대로 전달되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창의성이 생긴다. 치료하기 힘든 현대병의 하나인 아토피! 숲에 오면 저절로 치유된다.

 

 숲에서는 천방지축인 아이들이 유순해지고, 마음을 짓누르던 고민들도 한결 가벼워진다.
숲해설가와 함께하면 숲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봄가을이면 서울대공원에 각급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온다. 보통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가 가장 산만하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 아이들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기가 힘든지 도대체 질서가 안 잡힌다. 그럼에도 산에 올라가는 것은 힘들어 한다. 그러나 숲은 이런 아이들을 어느 결에 유순하게 만들어 놓는다. 누구든 일이 잘 안 풀려 짜증이 나거나 스트레스가 쌓이거든 숲으로 오시라.
봄이 되면 나무들도 움츠렸던 몸을 펴고 이파리들도 마치 사람의 눈빛처럼 반짝거린다. 꽃가루가 날릴 때면 사방에서 야릇한 눈빛이 오가고 짝을 찾느라 분주하다. 바야흐로 숲 속에도 연애의 계절이 온 것이다. 서로서로 짝짓기하고 2세를 만드느라 부산하다. 어쩌면 인간의 세계나 식물의 세계나 그리 똑같은지.


즐겁고 보람 있는 삶, 숲해설가가 되려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숲해설가가 될 수 있나요?” 하는 것이다. 요즘은 교육받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다. 미국이나 독일ㆍ일본 같은 곳에선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년쯤 됐다. (사)숲해설가협회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대학의 사회교육원이나 지자체에서도 교육과정이 많이 개설되어 있다.

 

 숲에 대한 애정과 지적 호기심이 있다면 숲해설가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나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했지만 전공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고 숲에 대한 애정과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이 있으면 된다. 공부? 다행히도 아주 재미있는 공부이다. 내가 교육받은 숲해설가협회에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숲해설가가 되고 싶다고 문을 두드린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곳이라선지 등록하기도 만만치 않고 교육비도 꽤 비싸다. 교육과정도 아카데미과정, 전문가과정 해서 1년이 넘고 결석 몇 번 하면 수료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대기자가 넘쳐 난다. 특히 직장에서 퇴직하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다. 돈벌이가 잘되는 줄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기대는 마시라.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살고 싶으신 분들은 용기 있게 시작해 보시라.


- 글

김선희 / 시인, 숲해설가

2008. 7. 30. 08:25

다시 찾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숲

다시 찾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숲

나는 숲에 자주 간다. 전공인 산림학을 가르치기 위해, 연구를 위해 숲을 찾는다. 그러나 특정한 목적 없이 그저 숲을 찾기도 한다. 내가 숲을 찾는 이유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숲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은 종종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숲에 가면 행복해지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숲은 아름답고, 건강하고, 지혜롭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리산의 숲과, 편안하게 거닐 수 있는 숲을 소개한다.

 

숲은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찾아도 숲은 아름답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각 계절이 풍기는 아름다움은 각각 다르다. 신록과 각양각색의 꽃들로 장식된 봄 숲은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다. 짙은 녹음의 여름 숲은 왕성한 생명력과 함께 활기찬 아름다움을 뽐낸다.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 숲은 낙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은은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앙상한 가지와 눈 덮인 소나무의 겨울 숲은 고독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이 때문에 숲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이다. 숲 자체도 아름답지만 숲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구성원들 즉, 나무, 풀, 야생화, 곤충, 새, 바위, 개울 등도 모두 아름답다. 이들 구성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이들의 각 부위도 유심히 살펴보면 모두 아름다운 선과 색을 지니고 있다. 나무를 예를 들면 줄기, 잎, 껍질, 꽃 등이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각자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숲은 거대한 아름다움 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숲은 건강하다
 

나무들은 자신이 사는 공간을 더럽히지 않는다. 숲은 사람들이 사는 집처럼 매일 쓸고 닦지 않아도 항상 청결함을 유지한다. 자신이 사는 공간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결하지 못한 숲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숲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결한 숲에서 사는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 건강하며 오래 산다. 나무들은 백년 이상 또는 천년 가까이 사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나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하는 생명체들이다. 숲은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연극 무대이다. 이 연극 무대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나무,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청장년기의 나무, 죽어 가는 노목, 죽은 고사목들로부터 생명체의 탄생ㆍ성장ㆍ노화ㆍ사멸 과정이 잘 보인다.
건강함이란 인위적 노력을 통해 젊음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 생명주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 진정한 건강함이 생긴다. 노화와 사멸도 건강한 생명의 일부이다. 인간사회가 노화와 사멸을 부정하거나 역행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오히려 건강함을 잃는 반면, 숲은 생명주기의 각 단계를 거리낌 없이 펼쳐 보이기 때문에 건강미가 넘치는 공간이 된다.


숲은 지혜롭다

약 4억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식물은 50만 년 전 등장한 인간보다 대선배다. 많은 나무와 곤충들도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출현해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기후변화, 빙하기, 지진, 화산폭발, 해일 등 지구상에서 일어난 엄청나고 수많은 변화를 모두 경험하고 살아남은 생명체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이들이 경험한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마도 이들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각종 환경문제에 대한 답안을 모두 알고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나무를 심는 일에 관심을 쏟는 데서도 그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냥 머물고 싶어지는, 지리산의 숲

이번 여름, 이렇게 아름답고 건강하고 지혜로운 숲을 찾아 떠나 보자. 모든 숲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 건강미, 지혜로움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숲은 지리산의 숲이다. 그중에서도 방문객들이 많지 않은 피아골에서 삼도봉, 반야봉에 이르는 등산로 주변의 숲들이다.

피아골 _ 아름답고 건강한 나무들의 천국

도시에서 찾아온 방문객을 향기롭고 맑은 공기로 맞이하는 직전마을부터 시작되는 등산로는 선유교, 삼홍소, 구계폭포를 거쳐 피아골 산장까지 깊고 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계곡 주변에 자라는 졸참나무, 나도밤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개서어나무, 노각나무, 함박꽃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진정 나무들의 세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고 다양한 나무들이 자란다. 이들은 도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계곡을 벗어나 임걸령으로 올라가는 조금 가파른 등산로를 걷다 보면 계곡 물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총명해진 청각 때문에 바람에 부딪히는 미세한 나뭇잎 소리까지 매우 잘 들린다.

 

 삼홍소 인근의 계곡(왼쪽)과 피아골 상류의 계곡(오른쪽).

삼도봉 _ 우리나라 숲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

임걸령에서 능선 길을 따라 1시간 남짓 걸으면 노루목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화개재를 거쳐 뱀사골 산장으로 갈 수 있으며 왼쪽 길은 반야봉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반야봉으로 오르기 전 피아골 계곡으로 나 있는 큰 바위에 앉아 바위 밑으로 펼쳐진 수해(樹海)를 감상할 수 있다. 전라남ㆍ북도와 경상남도 3개 도의 경계가 한데 마주치는 곳이라 삼도봉이라고 한다.
그동안 어두운 숲 속 길을 걷다가 이곳에 이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이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너른 바위가 나타난다. 땀을 식히면서 계곡의 멋진 모습을 감상하기에 매우 알맞은 곳이다. 넓은 계곡에 펼쳐진 아름다운 숲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숲 속에서 숲을 느끼는 멋과는 다른 웅장한 멋을 즐길 수 있다.
키 큰 신갈나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이곳 바위턱에 앉으면 신갈나무의 수관을 볼 수 있다. 삼도봉 바로 밑에 있는 신갈나무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마치 해변에서 일광욕하는 사람 마냥 하늘을 향해 자기 자신을 한껏 내던진 모습이다.
이 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숲이 전형적인 우리나라 숲의 모습이다. 이곳에 앉아 계곡 쪽을 바라보노라면 우리 주위에선 사라져 버린 조선시대 이전의 숲을 보는 것 같다. 서울에서 불과 10시간 정도 거리에 조선시대 이전의 숲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런 아름다운 숲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삼도봉에서 내려다본 계곡. 지리산의 웅장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야봉 _ 우주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느낄 수 있는 곳

노루목에서 한 시간 반 정도면 반야봉에 이른다. 반야봉 정상은 지리산의 깊은 멋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반야봉의 멋을 대변하는 것 중 하나는 이 높은 곳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뚝 솟아 강인함을 보여 주는 구상나무들이다. 구상나무는 전나무속의 나무로 지리산ㆍ덕유산ㆍ한라산 등 해발 500미터 이상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이다. 수분이나 양분이 부족해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고산지대에서도 자라는 꿋꿋한 모습을 보여 준다. 또 힘차게 뻗은 가지는 많은 잔가지들을 사방으로 무성하게 뻗어 독특한 멋을 풍기며, 짧고 굵은 가지에는 강인함이 배어 있다. 여름철 생장기엔 가지 끝에 피어나는 신록이, 마치 연초록의 망울이 가지 끝에 달린 듯 아름답다.
반야봉의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것에는 구상나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 반야봉 정상에 앉아 보면 지리산의 깊은 품안에 안긴 듯 포근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여기서 동쪽을 향해 보면 일고여덟 겹의 산 너머 솟아오른 높은 봉우리 하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리산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높은 중봉과 제석봉을 양옆에 끼고 있는 천왕봉(1,915미터)이다. 천왕봉에서 몸을 정반대로 돌려 보면 남서쪽으로 노고단(1,507미터)이 보인다. 성삼재까지 산허리를 뚫은 도로가 보이는 것이 옥에 티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대자연의 품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나를 느낄 수 있다.
반야봉에서 천왕봉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계가 트인 날을 만나기는 흔치 않다. 혹시 그런 날을 만나면 커다란 축복이다. 날씨가 맑은 날 이곳에 서면 새로운 대화 상대자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그동안 만나고 대화했던 나무ㆍ숲ㆍ들꽃ㆍ개울물 등은 모두 사라져 없어지고 이제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하늘, 태양, 그리고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봉우리들뿐이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을 통해 하늘이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멀리 구름 위로 솟아 하늘과 맞닿아 있는 천왕봉은 하늘과 산이 서로 교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나 자신도 하늘 가운데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 일출이나 낙조를 보는 것은 우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느껴 보는 일생일대의 경험이 된다. 하늘이 이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이곳에 마냥 머물고 싶어진다.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길.

가볼 만한 아름다운 숲 

지리산의 숲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1박 2일 또는 2박 3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차량으로 접근하기 쉽고 짧은 시간 내 편안하게 거닐 수 있는 숲 몇 곳을 소개한다. 아름다움과 건강함과 지혜로움으로 뭉쳐진 숲을 찾는 일은 우리 스스로를 아름답게, 건강하게, 지혜롭게 만드는 노력의 첫걸음이다.

1. 아름다운 숲

울진 소광리 소나무 숲 금강산까지 가지 않더라도 줄기가 곧게 뻗는 금강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30미터 이상의, 나이 150~200년 된 키 큰 소나무들이 집단적으로 자라는 웅장한 숲이다. 적극적으로 경영되고 있는 국유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산림경영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함께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의 건축재 등을 생산하던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숲이기도 하다.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 방문하면 숲해설가가 소광리 숲의 역사와 문화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도 한다.
울진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통고산 자연휴양림 못 미쳐 우회전해서 북쪽으로 소광천 상류 쪽으로 가다 보면 소광리로 들어갈 수 있다.

 

 소광리 입구 전시실에 전시된 황장목(왼쪽 위)을 봐도 소광리 소나무 숲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시원스럽게 뻗은 금강소나무.

안면도 승언리의 솔숲 흔히 우리나라 숲들은 산에 있는 반면, 안면도 자연휴양림과 그 주변에 위치해 있는 숲은 해안선을 따라 펼쳐져 있어 바다와 어우러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즉 바다와 숲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곳도 울진 소광리 숲과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필요한 건축재나 조선재를 조달하기 위해 특별히 관리했던 숲이다. 지금은 휴양림도 조성되어 있고, 포장되고 잘 정비된 산책로와 전망대도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홍성 나들목을 거쳐 서산 AB지구 방조제를 지나, 77번 남쪽 지방도를 타고 안면읍을 지나 약 5킬로미터 더 가면 길가에 휴양림이 나타난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의 소나무 숲. 바다와 함께 숲을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콘크리트 숲 속의 진짜 숲, 창덕궁 후원 서울 시내 도심에서도 숲길을 걸을 수 있다. 흔히 비원으로 불리는 창덕궁의 후원이다. 몰론 안내원의 안내를 받는 제한된 숲 탐방을 해야 하지만 콘크리트 숲으로 덮인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깊은 산에 들어온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숲의 특징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이지만 조경용 관상수를 심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을 심었다는 것. 인공 정원처럼 일렬로 나무를 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심어 마치 숲이 잘 우거진 산에 온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느티나무, 밤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등 대부분 활엽수들이 심어져 있어 여름에는 짙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또는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10분만 걸으면 도심 속의 오아시스로 들어갈 수 있다.

2. 건강의 숲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오대산 국립공원 일주문에서 옛길을 따라 가면서 월정사까지 난 800미터의 울창한 전나무 숲길. 곧게 뻗은 거대한 전나무들이 도열해서 만든 이 길을 걸으면 웅장한 성전이나 신전에 들어온 듯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넓은잎나무들로 이루어진 숲보다 전나무처럼 바늘잎으로 이루어진 숲에서는 피톤치드라고 하는 삼림욕 물질이 많이 나와 이 길을 걷는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
버스로 갈 경우 진부에서 월정사행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자동차로 갈 경우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월정사(진부) 나들목에서 월정사 방향으로 빠져나와 6번 국도를 따라 오대산국립공원 입구 간평교에서 내려서 446번 지방도를 탄다.

대관령 자연휴양림 내 소나무 숲 서울서 강릉 쪽으로 가다가 대관령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에 대관령 자연휴양림이 있다. 1989년 숲 속에서 휴식과 건전한 여가활동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개장된 휴양림이기도 하다. 그만큼 휴양적 가치가 높은 숲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휴양림 주변에는 자동차 도로가 뚫리기 전 영서와 영동지방을 서로 연결시키던 대관령 옛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대관령 쪽으로 올라가다 볼 수 있는, 1920년대 씨앗을 뿌려 심은 소나무들이 서 있는 울창한 숲도 흥미롭다.
대관령 휴게소를 지나 강릉 방향으로 8킬로미터 지점. 또는 서울서 자동차로 가자면 횡계를 거쳐 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 어흘리 마을 안쪽에 위치.

 

 대관령 직파조림지.

우이동 솔밭 공원 산이나 경사지가 아닌 평지에, 그것도 서울 시내 주택가 근처에 1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집단적으로 자라고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여기서 자라는 소나무는 소광리나 안면도의 소나무들과는 달리 줄기가 굽고 휘고 울퉁울퉁한, 제멋대로 자라는 기기묘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훌륭한 쉼터와 산책길을 제공하고 있는 숲이다.
덕성여대 건너편 덕성여대 버스정류장 앞. 지하철 1ㆍ4호선 창동 또는 수유역에서 내려 10번 마을버스 타고 덕성여대 하차.

3. 지혜의 숲

남해 물건리 어부림 마치 열대지방 해안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맹그로브 숲처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로부터 마을과 논을 보호해 주고 바다의 물고기들을 유인할 목적으로 조성한 방조 어부림으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숲이다. 또 바다의 해양생태계와 육상의 숲 생태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 주는 흥미로운 숲이다.
남해고속도로 타고 진교 IC에서 남해대교, 남해읍, 상주해수욕장을 지나서 갈 수 있다.

담양 관방제림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300~400년 전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인공적으로 심어 우리 선조들의 자연 재해에 대비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숲이다. 담양 읍내 담양천 북쪽 제방에 조성된 숲으로 현재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400여 그루가 2킬로미터에 걸쳐 남아 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백양사 IC에서 내린다. 1번 국도를 따라 9킬로미터 가면 백양사 입구, 여기서 15번 도로를 타고 15킬로미터 가면 담양읍에 이른다.

함양 상림 9세기 말 신라 진성여왕 때 마을을 가로지르는 위천이 홍수 때마다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 이 마을의 태수로 부임해 있던 최치원이 둑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조성한 천년 된 숲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조성한 숲은 3킬로미터 정도였는데 그동안 개발과 훼손으로 현재는 1.6킬로미터 정도만 남아 있다. 평지에 조성되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접근이 용이한 많은 휴양림들이 침엽수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상림은 120여 종의 넓은잎나무 2만여 그루로 이루어져 있어 계절에 따라 운치를 달리한다.
88올림픽고속도로에서 함양 IC를 빠져나오자마자 만나는 백천 사거리에서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해 4킬로미터쯤 가면 함양 읍내가 나오고 군청 바로 앞에 학사루가 있으며, 상림은 여기서 7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이외에 (사)생명의 숲에서 2000년부터 매년 개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마을숲, 거리숲,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숲 부문에서 수상한 숲들을 둘러보는 것도 그동안 잘 안 알려진 아름다운 숲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명의 숲 홈페이지(www.forest.or.kr) 참조.


- 글

탁광일 / 국민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

2008. 7. 30. 08:21

숲 이야기

숲에는, 선물 가득 안은 산타가 산다

숲이 무성해지는 계절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마음을 다쳤을 법도 하건만, 숲은 변함없이 두 팔 벌려 인간을 맞는다. 미국의 환경보호론자 존 뮤어가 그래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숲에 가서 그 기운을 흠뻑 마셔라. 햇빛이 나무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것과 같이 자연의 평화가 우리에게 흘러들어 올 것이다." 어느새 한해의 중턱에 오른 6월. 빡빡한 일상을 잠시 벗어 두고 숲으로 가자. 가서, 숲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온몸으로 받아 보자.

숲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까닭

숲. 참으로 듣기만 하여도 포근한 말이다. 숲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들에게 '숲'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을 말해 보라고 하면, 표현은 다를지라도 대부분 '편안함과 순수함'이란 주제로 집약되는 얘기들을 꺼낸다. 숲은 무한한 상상과 자극의 원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숲에서 공통적으로 받는 느낌은 '고향 같은 아늑함과 평안함'이 아닌가 싶다.
왜 우리는 숲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왜 우리는 도시의 인공환경보다는 숲의 자연을 선호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역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숲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숲이야말로 인류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아닐까?

태초에 숲과 인간은 하나였으니…

고생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기원을 약 500만 년에서 700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숲 지역으로 추정한다. 숲에서 시작한 인간의 역사는, 지금부터 약 5,000년 전쯤에 인간이 숲에서 나와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바뀐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급격한 도시생활을 하게 된 것도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세월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인간의 역사 대부분은 숲에서 숲과 함께 살아온 그야말로 숲과 함께한 역사이다.

그런데 그 기나긴 인간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불과 눈 깜박할 사이에, 우리들은 숲과 자연을 등지며 살고 있다. 하루 24시간 동안 맨땅 한 번 밟아 볼 시간 없이 자연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아직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숲 환경에 적응하며 살도록 설계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 이런 자연과 단절된 삶이 편할 리가 없다. 육체의 병, 마음의 병이 모두 숲과 동떨어진 삶으로부터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숲과 함께한 역사이다.
지금처럼 도시생활을 시작한 것도 불과 한 세기 전의 일이다.
탯줄 같은 숲과 단절된 삶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 여기저기가 아픈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숲에서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만나다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갖가지 물질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숲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숲은 또한 우리가 숨쉴 산소를 만들어 내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주며, 우리가 편히 쉴 휴양장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숲의 선물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원초적 고향으로서의 안식과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다. 숲이 없다면 우리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은 지켜질 수 없다.
숲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효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불과 1900년대 이르러서였다. 숲의 건강효과가 처음 보고된 것은 아마도 1900년대 초 미국 뉴욕시의 한 병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당시 그 병원에는 입원 환자가 너무 많아 병실이 모자랐다. 병원 측은 전염성이 있는 폐결핵 환자들을 따로 분리해 야영을 시키며 치료를 했는데 그 회복률이 상당히 높은 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 많은 실증적 연구들이 숲의 건강효과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숲의 이용 형태는 주로 집단야영이나 일정한 커리큘럼을 가진 프로그램에 의한다.

야영이나 프로그램에 의한 건강효과로는 정신병의 치료, 이상행동의 교정, 사회성의 증가, 마약ㆍ알코올 중독 치료, 소년범의 재범률 저하, 신체의 균형 조절, 신경 우울증 치료 등을 들 수 있다. 몇몇 연구는 숲을 이용하는 것이 학력 증진 및 학교와 교사에 대한 호의적 자세 증진에도 효과가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숲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물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이다.


숲이 어떻게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거지?

숲의 건강효과를 의학적 측면에서 볼 때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것이 ‘피톤치드 효과'이다. 1969년 레닌그라드 대학 식물학 교수인 토킹 박사가 발견한 것으로, 수목에서 방출되는 ‘피톤치드'란 물질이 인간에게 해로운 균을 살균한다는 것이다.

이 피톤치드의 장점은 개개의 수목이 그 특성에 따라 살균의 범위를 선택하고 인간의 몸에 무리 없이 흡수된다는 것이다. 또 수목의 향기와 수액에 포함된 테르펜계 물질의 약효가 숲의 건강효과를 가져오며, 이것은 주로 피부 자극제ㆍ소염제ㆍ소독제ㆍ완화제에 쓰인다.

숲에는 피톤치드 이외에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무한히 많은 인자들이 있다. 풍부한 음이온, 깨끗하고 질 좋은 산소, 행복 호르몬의 방출을 돕는 따사로운 햇빛,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민감하게 해 주는 새소리ㆍ물소리, 상쾌한 바람, 아름다운 꽃…. 숲이 주는 이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우리 몸의 면역과 신진대사를 도와 건강하게 한다.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림욕은 우리 몸의 NK세포를 활성화시켜 면역력을 높여 준다고 한다. NK(Natural Killer)세포는 면역체계의 최전방에서 공격과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는 면역세포로 백혈구의 림프구에 존재하며, 각종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공격하여 없애는 역할을 한다.

NK세포 개수가 정상인은 50억~1,000억 개지만, 암환자는 그 수가 매우 적고 기능도 저하되어 있는 것만 봐도, 숲이 NK세포에 미치는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숲에 갔을 때 왠지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숲속의 자연살균제, 피톤치드
식물이라는 의미의 '파이톤(Phytion)'과 죽이다란 뜻의 '싸이드(Cide)'가 합성된 말로, 나무를 비롯한 식물이 내뿜는 자기 방어물질이다.
    
숲속의 행복 호르몬, 햇빛
숲속의 햇빛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세라토닌의 분비를 활성화시키고, 몸 안에서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숲이 만드는 보약, 산소
숲은 광합성작용으로 산소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말단 세포까지도 산소가 필요하므로, 숲이야말로 우리 삶의 원천인 셈이다. 숲속에서의 호흡이 상쾌한 이유는, 다른 곳보다 깨끗하고 풍부한 산소가 폐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숲의 비타민, 음이온
음이온은 일반적으로 폭포나 숲 근처에 많이 존재한다. 음이온은 광합성작용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데다, 숲에는 오염물질이 없어 음이온이 잘 보존될 수 있다.


숲의 '산림자극'에 내 몸이 깨어난다

피톤치드, 햇빛, 새소리ㆍ물소리, 바람….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숲의 선물이다.


심리적 측면에서 살펴본 숲의 건강 메커니즘은 자극이란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생활의 환경과 숲의 환경이 다름으로 해서 얻어지는 자극 효과이다. 이를 ‘산림자극'이라고 칭하는데 '산림자극'은 번스테인이라는 환경심리학자가 처음 사용했다. 심리적 복리를 증진하는 데 숲의 역할을 설명한 것이다.

‘산림자극'은 ‘도시자극'과 반대되는 의미로, 낮은 인구밀도, 낮은 수준의 소음과 움직임, 그리고 낮은 변화율을 포함한다. 도시환경은 인간에게 많은 심리적ㆍ육체적 위협과 스트레스 자극을 준다. 그와 반대로 숲은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피감을 갖게 해 주고, 육체적ㆍ심리적 안정과 편안함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기 정체성을 갖게 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숲이 주는 '편안한' 자극을 통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숲에 가면 일상의 복잡함 속에서는 얻기 힘든, 심리적인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숲과 나무를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숲은 최대의 복지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한 상태를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한 상태가 아닌 것뿐만 아니고,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 복리적으로 완전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바탕을 둔다면, 숲이 인간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또는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산과 자연을 찾아,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때 숲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수백 개의 병원을 짓는 일보다 주변의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나 긴장이 몰려올 때
숲이나 나무를 바라봄으로써 안정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리 국토의 65%를 차지하는 숲을 국민의 건강복지 자원으로 잘 활용한다면, 우리의 건강과 삶의 질이 한결 달라질 것이다.

-글

신원섭 / 충북대학교 산림학과 교수. 산림치유포럼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