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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31. 12:47

생활 속의 우리말

[생활 속의 우리말] 우리들의 집엔 ‘천정’이 없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데도 잘못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국어학자나 기자가 아닌 이상 우리말 문법이 틀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도 그렇지만, 사물도 제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었을 때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겠지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명사'들을 한번 알아볼까요?


회의실에 둘러앉은 P차장, M대리, K대리. 코앞으로 다가온 경쟁 프레젠테이션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모두의 얼굴에 고민과 생각이 가득하다. 혈기 왕성한 청춘에 회의실을 지키고 앉아 있기가 좀이 쑤셨던 K대리, 급기야 회의와 상관없는 주제를 꺼낸다.
- 근데 요즘, 소고기 먹기 불안하지 않아요? 난 젊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고기 먹어야 할 날이 많
   은데….
안 그래도 생각이 꽉 막혀 있던 참이라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P차장, K대리의 '딴지'를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친다.
- 안전하대잖아. 아니라면, 안전하게 만들도록 해야지. 그건 그렇고, 소고기가 뭐야, 쇠고기지.
그렇게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소고기가 맞네, 쇠고기가 맞네 하더니, 급기야 먹거리 안전 논란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프레젠테이션 기획안이야 M대리가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심산이다. 그냥 넘어갈 M대리가 아니다.
- 차장님, 대리님. 소고기ㆍ쇠고기 둘 다 맞는 말이거든요. 이제 됐죠? 회의 안 하실 거예요?

하지만 K대리도 그냥 꼬리를 내리진 않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10분 쉬는 게 좋겠다 싶었다.
- 차장님, 우리 담배 한 대 피고 할까요? M대리도 커피 한 잔 마셔. 가만 있자, 재털이가 어딨더라?
- 그래 그래. 우리 잠깐 쉬자. 나도 담배 한 개피 줘 봐.

갑자기 눈꼬리가 올라가는 M대리. '이 남자들이 점점' 하는 표정이다. 커플처럼 다정해서 눈꼴사납게 굴던 P차장과 M대리가 간만에 싸울 기세인 것이 K대리는 즐겁기만 하다. M대리의 말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 두 분 오늘 뭐 잘못 드셨어요? 오늘따라 두 분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모조리 틀리잖아요. 담배
   는 피는 게 아니라 피우는 거
예요. 물론 안 피우면 더 좋겠지만. '피다'는 자동사라 목적어가
  
필요없거든요. 그리고 재털이가 아니라 재떨이, 한 개피가 아니라 한 개비가 맞는 거고요. 그렇게
   우리말을 다 틀리면서 기획안은 어떻게 쓰신담? 저 머리 좀 식히고 올게요.

문을 꽝 닫고 회의실을 나가 버리는 M대리. 당황한 P차장과 K대리의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 사이를 아예 벌려 놓고 말겠다는 심산인 듯 K대리가 쐐기를 박는다.
- 차장님은 저런 M대리 어디가 예쁘다고 맘에 두고 그러세요? 어떻게 M대리 콧대는 하늘 높은
   줄을 몰라. 완전히 천정부지라니까. 회의실 천정을 뚫겠네, 뚫겠어.
그렇게 말해 놓고 K대리는 아차 싶었다. P차장이 자신을 쏘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P차장이 K대리를 왜 쏘아 보았을까요? K대리가 한 말 중에 잘못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천정'입니다. 물론 당사자가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하여 헐뜯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요.
물가가 한없이 치솟을 때 흔히 '천정부지(天井不知)'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집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일 때는 천정이 아니라 '천장'이 맞습니다. 또 천정부지는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에 '하늘 높은 줄 모른다'라고 순화해서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헷갈리신다면 '천장' 하나만 기억하셔도 되겠습니다. 우리들의 집엔 천정이 없습니다.  


※소고기(O), 쇠고기(O)
   원래는 사투리와 표준어 관계였지만 이제는 둘 다 맞는 표현입니다.

※재털이(X), 재떨이(O)
   재는 떠는 것이 아니라 '터는' 것이 맞고, 재를 터는 곳은 재털이가 아니라 '재떨이'입니다.

※복숭아뼈(X), 복사뼈(O)
   발목 부근에 나온 뼈를 뭐라고 부르십니까? 복숭아뼈가 아니라 '복사뼈'입니다.

※칼치(X), 갈치(O)
   아무리 칼처럼 길쭉하게 생긴 생선이지만, 칼치가 아니라 '갈치'가 맞습니다.

※봉숭아(X), 봉선화(O)
   이제 조만간 이 꽃을 손톱에 물들이는 계절이지요? '봉선화'가 표준어입니다.

※장본인(X), 주인공(O)
   장본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안 좋은 일을 행한 당사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회사가 재기할 수 있는 계약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나 '10년 동안 남을 도운 미담의 장본인'
   같은 표현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럴 때는 '주인공'으로 써야 맞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망친 장본인'이란 표현은 괜찮습니다. 

- 글

김지우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