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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4. 09:15

누군가 언젠가는 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먼저 방아쇠를 당겨라 - 넷

[나의 확장] ④누군가 언젠가는 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먼저 방아쇠를 당겨라

역사적 인물이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은 운이 좋아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물론 시장환경이나 주변 여건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위대한 발명이나 혁신적인 제품 개발도 가능하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의 첫걸음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그들은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일까?

한때 시중에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성공이든 출세든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액면 그대로의 산술적 의미보다는 운도 어느 정도 따라 줘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말에는 또 성공에 이르는 좁은 길을 용케 찾아낸 이들을 시샘하는 심리도 들어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속설은 더욱 진화해 요즘에는 ‘운 11-기 마이너스1'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실력이 형편없어도 운만 따라 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땀과 노력의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불황기의 비즈니스 분위기가 물씬 배어 있는 반어법이다.

운은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일까. 실제 성공한 사람들이 체감하는 운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동안 필자가 만나 본 대기업의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들은 한결같이 “운이 좋아서 지금 자리까지 왔다”고 한다. 대개 겸양의 미덕을 나타낸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들의 성장 로드맵을 들여다보면 만만찮은 여정들이 드러난다. 어려운 문제를 하나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난제들이 주어지고, 어느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나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분야의 새로운 업무가 맡겨지는 식이었다.

 


노력하는 자에게 ‘운칠기삼'은 부질없는 우스갯소리

TV와 휴대전화를 포함해 삼성그룹의 일곱 개 사업부를 총괄하고 있는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인문계 출신(서울대 무역학과)이다. 공과대학 출신들이 각 사업부의 요직을 점령하고 있는 조직에서 최지성 사장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전문성을 키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수원사업장을 방문하는 외국인 바이어들의 공식 프레젠테이션 요청을 거절한다. 의아해 하던 바이어들도 최지성 사장과 10분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배경을 알게 된다. 세계 경제의 거시적 흐름에서 첨단 기술의 미시적인 동향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는 그의 식견과 전문성은 여느 화려한 프레젠테이션보다도 더 호소력이 있다.

1977년 삼성에 입사한 그는 1985년 그룹 비서실에서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부문)의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으로 발령이 났다. 소장이라고는 하지만 한 명의 직원도 없는 단신 부임이었다. 처음 독일에 도착한 날, 한 박스에 64KD램 칩 1만 개가 들어 있는 박스 세 개가 도착해 있었다. 첫 임무로 자신이 팔아야 할 제품이었다. 어디서부터 영업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한숨만 길게 나왔다. 할 수 없이 현지 전화번호부에서 ‘전자'와 ‘PC'라는 상호만 나오면 무조건 찾아갔다. 동시에 총 1,000페이지에 달하는 영문 반도체 서적을 구해 관련 이론과 지식을 통째로 외웠다. 제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지성 사장의 영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한번 길을 나서면 왕복 1,200km가 넘는 여정이 다반사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토리노 인근의 이브레아로 가는 출장이 특히 잦았다. 저녁 9시께 출발해 밤새도록 달리면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즈니스 시간대에 사람들을 만나 업무를 보고 저녁에 다시 차를 몰아 독일로 돌아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무박 2일짜리 출장이었던 셈이다. 운전 중 졸리는 것이 겁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1986년 12월 21일에는 이탈리아에 가기 위해 알프스산맥을 넘던 중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반파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최지성 사장은 스스로 이 시기를 “참으로 결사적으로 살았다”고 돌아본다. 이 같은 각고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그는 유럽 진출 첫 해 혼자서 100만 달러어치의 반도체를 팔았다. 이듬해는 500만 달러, 그 다음해는 2,500만 달러, 또 그 다음해는 1억 2,500만 달러어치를 팔아 해마다 500%씩 판매를 신장시켰다.

물론 최지성 사장만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만한 인재는 삼성에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관건은 어떤 위치에서 힘든 임무가 주어졌을 때 누군가는 하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하더라도 다음 임무까지 잘 해낼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던져지는 새로운 과제들은 늘 또 다른 솔루션을 요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많은 솔루션을 갖게 되는 사람은 그 자체로 ‘해결사'의 역할과 역량을 지니게 된다.


칭기즈칸, 빌 게이츠가 없었다면?

직장인들은 항상 조직 단위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조직을 움직이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주체는 개인이다. ‘개인 플레이 하지 말라'는 상사의 질타는 조직 단위의 협력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이지, 보다 나은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고집스럽기로 정평이 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지구촌의 정보기술(IT) 환경은 어찌 됐을까. 현대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추어 볼 때 누군가는 그들의 역할을 대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1909년 미국의 통신사 AT&T에 근무하던 한 통계학자가 회사에 보고서 한 장을 올렸다. 당시 늘어나는 전화통화량과 미국 인구증가율 전망에 대한 것이었다. 이 학자는 이를 토대로 1925년이 되면 미국의 모든 여성이 전화교환원으로 근무해야 폭증하는 전화 수요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AT&T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즉각 자동 전화교환기 개발에 나섰고, 2년 만에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AT&T는 이를 발판으로 미국 통신시장을 석권했다.

1931년 5월 13일은 프록터앤갬블(P&G)에 기념비적인 날이다. 닐 맥엘로이라는 신입사원이 ‘보고서는 한 장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사내 금기를 깨고 무려 석 장짜리 보고서를 올렸던 것이다. 요지는 상품별로 독자적인 마케팅팀을 운영하자는 내용이었다. 요즘 경영기법으로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전사 차원의 제품 마케팅 외에는 변화를 시도하지 않던 당시로서는 꽤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P&G는 미국 전역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확고한 브랜드 파워를 확립했다. 요즘 국내 일부 대기업들이 마케팅부문 영입 1순위로 P&G 출신을 꼽는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위대한 시작은 어느 한 사람에서부터

만일 그들이 없었더라면 AT&T와 P&G의 기업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0세기 들어 급변한 산업사를 살펴보면 누군가는 자동교환기 개발과 사업부별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을 것이다. 단지 시간과 기회의 문제였을 수 있다.

특정 개인의 생각이나 구상이 조직에 채택되고 그것이 사회와 경제의 흐름을 바꾸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아이디어가 만개할 수 있는 주변 여건이 성숙되어 있어야 한다. 내적으로 기업을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고 외부 시장환경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AT&T의 자동 전화교환기 개발은 전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라는 외부 시장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고, P&G의 혁신은 포드로부터 촉발된 사업부별 마케팅제의 위력이 경영 일선에 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창발적인 아이디어는 네크워크의 자율적인 자기조직화를 통해 네트워크 내에 축적된 정보와 지식, 상상력을 흡수하며 확장된다. 그 결말이 기존 네트워크의 질적 전환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의 출발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다.


- 조일훈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