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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 08:28

위기를 극복한 기업가 3

[위기를 극복한 기업가] 루이스 거스너, 거대 공룡 IBM을 뛰게 하다

50년 후에도 글로벌 Top 10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히는 IBM. IBM도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IBM은 1980년대 부실해진 기업 체질을 성공적인 기업혁신으로 극복하고 재도약함으로써 21세기 가장 주목할만한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위기극복과 재도약을 이끈 인물은 2002년 세계 최고의 CEO로 뽑혔던 IBM의 전 CEO 루이스 거스너(루이스 V. 거스너 Jr)다. ‘위기 해결사' 루이스 거스너에게 위기를 극복하는 경영전략을 배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 가장 존경받는 기업

경제계에는 이름만 들어도 그 묵직함이 느껴지는 기업들이 있다. 국내에서라면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그러할 터다. 눈을 세계로 돌려 보자.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매년 선정하는 500대 기업 1위에 오른 유통업체 월마트나, 10위권에 탄탄하게 이름을 올린 도요타자동차, GE 같은 기업들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만큼 위상이 대단하다.

올해 500대 기업에서 46위를 기록한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역시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엄청나다. 오히려 현재의 명성은 과거에 비하면 다소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1914년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이 설립한 IBM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에 속해 있으면서 또한 ‘가장 중요한 기업'이라고 평가 받았다. 이른바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였던 셈이다.

 

IBM은 컴퓨터 등 디지털 사업 기술표준을 선도했고, 정형화된 복장규정과 생활규칙, 최고의 복리후생 등 일류 기업으로서의 문화를 자랑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각종 언론이 꼽은 ‘가장 존경 받는 기업'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IBM에 찾아온 위기,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다 변화를 못 읽다

그런데 이렇게 1등 자리를 절대로 내놓지 않을 것 같던 IBM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 징후는 뚜렷했다.

먼저 각종 재무 수치가 안 좋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매출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둔화됐고 1986년에는 40년 만에 처음으로 순이익이 감소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1980년대 들어 169개 국가에 자회사를 거느리게 됐고 40여만 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공룡' 기업이 됐지만 1인당 생산성은 경쟁기업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메인 프레임 중심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급속히 전환되는 컴퓨터의 시장환경도 IBM에는 불리했다.

 

문제는 정작 IBM이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해 ‘별일 있겠느냐'는 식의 안일함에 빠진 것이다.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고 있었지만 워낙 경쟁사들에 비해 덩치가 크다 보니 줄어드는 정도를 체감하지 못했고, 소비자들의 IBM에 대한 인식도 나빠지고 있는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더구나 정보기술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인데도 소프트웨어와 마이크로프로세스 칩의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응용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게, 마이크로프로세스 칩은 인텔(Intel)에게, 프린트는 엡손(EPSON)에게 외주를 주는 등 핵심부품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심지어 PC마저도 컴팩(Compaq)과 애플(Apple)의 성장을 허용했다. 그러면서도, 시장 규모는 줄어들고 있는데 과거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형 컴퓨터에만 집착하는 오류를 범했다.

회사가 이런 상황에 이르니 눈치 빠른 인재들은 빠져나갔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도, 활기차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직원도 없었다. ‘미국의 보배'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IBM은 주요 언론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컴퓨터 문외한 루이스 거스너의 등장

뒤늦게 위기를 깨달은 IBM 경영진은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새롭게 조타수를 잡게 된 이가 루이스 거스너였다. 그는 컴퓨터업계와는 무관한 제과업체 나비스코의 CEO였다.

그러나 그는 쓰러져 가는 나비스코를 살려 낸 구원자였다. 나비스코는 1989년 무리한 기업확장으로 290억 달러(약 29조 원)이라는 빚을 지고 있었지만 루이스 거스너는 이를 절반으로 줄여 냈고, 1992년도에는 1989년 이후 3년 만에 흑자를 냈다. 이에 앞서 맥킨지 근무시절에는 미국의 유명 철도회사를 회생시키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루이스 거스너는 ‘위기 해결사'로서의 명성을 IBM에서도 계속 이어 나갔다.

29조 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아 쓰러져 가던 제과업체 나비스코를 불과 3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회생시킨 위기 해결사 루이스 거스너.
그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여 회생 가능성마저 회의적이었던 IBM을 구원할 유일한 CEO로 선택되었다.
(사진 : 매일경제신문 DB)


위기극복법 1. 수입을 늘리기보다 나가는 비용을 줄이다

루이스 거스너의 첫 번째 작업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 IBM의 매출액 대비 비용지출 규모는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비용을 줄이고자 정부 관련 사업 등 이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자산을 팔아 버렸고 고정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빌딩 등 부동산도 대폭 줄여 1993년부터 1997년까지 4년간 2500 평방피트(ft²) 이상의 부동산을 처분했다.

대규모의 인력 구조조정도 단행됐다. 1993년 초 30만 명이 넘어섰던 직원을 연말에는 25만 명으로, 1994년에는 20만 명대로 30% 이상 줄였다.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루이스 거스너는 “한 번 크게 얻어맞는 것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계속 맞는 고문보다 덜 고통스럽다”며 직원들의 이해를 구했다. 루이스 거스너의 비용 줄이기 프로젝트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매년 50억 달러의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냈다.

위기극복법 2. 변화에 민감한 기업문화를 만들다

잘되는 기업에 가면 넘치는 활기를 느낄 수 있지만 망해 가는 기업을 보면 직원들의 눈빛은 흐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루이스 거스너는 IBM 직원에게서 후자의 모습을 봤다.

루이스 거스너는 채찍과 당근 정책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주인의식을 고취시켰다. 사진은 뉴욕 암몽크(Armonk)에 위치한 IBM 본사.
(사진 : 매일경제신문 DB)

이 같은 무사 안일한 태도를 버릴 수 있도록 종신고용정책부터 폐지해 버렸다. 개혁 프로그램에 호응하지 않는 사조직과 파벌도 없앴다. 임원들에게는 철저하게 결과 중심으로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했다. 회사 기여도를 평가할 때도 상사가 일방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서 동료 6인이 익명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택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웃고 칭찬하는 분위기 속에서 결론 없이 끝났던 회의문화도 긴장감 속에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바꿔 버렸다. “회의를 위한 회의는 필요 없고, 장황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으니 회사에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터놓고 얘기하자”며 발표자의 프로젝트 플러그를 뽑아 버린 일화도 유명하다.

채찍뿐 아니라 당근도 있었다. 과거 고위 임원에게만 부여하던 자사 주식보유 제도를 일반 사원들에게도 확산시켜 주인의식을 갖고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위기극복법 3. 소비자 중심으로 다시 변화하다

루이스 거스너는 미국의 대표기업이었던 IBM이 소비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기업의 성패는 소비자에게 달렸다는 점을 되새기며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인정받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업무 시간의 40% 이상을 고객과 함께 보냈는데, 고객과 더 가까이 있겠다는 의미로 집무실을 고객이 많은 뉴욕으로 옮겼다. 지역별 영업조직을 금융, 여행, 보험 등 산업별 영업조직으로 개편한 것도 고객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었다.

고객에게 단순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사업의 문제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로터스 디벨롭먼트(Lotus Development Corp.) 등 관련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루이스 거스너는 고객에게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로터스를 인수하여 사업군을 다각화했다. 사진은 2008년 로터스 퀵커(Quickr) 서비스 시연회. (사진 : 매일경제신문 DB)


흑자 전환과 함께 옛 명성 되찾다

결과적으로 루이스 거스너의 개혁은 성공을 거뒀다. 1993년 순손실이 81억 달러였던 IBM은 그의 부임 1년 만에 순이익 30억 달러로 돌아섰다. 필자도 참석했던 1995년 라스베이거스 컴덱스(COMDEX)에서 그는 기조연설을 맡으며 IBM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1997년에는 모든 사업이 흑자로 전환했고 2000년 순이익은 8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하드웨어라는 저성장 사업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 솔루션 등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고성장 사업으로 기업을 이끌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변화에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것만이 경영진리다”

IBM의 사례에서 보았듯 당장 ‘잘나가는' 듯 보이는 기업도 예외 없이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또 위기는 위기인지 아닌지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소리 없이 찾아온다. 때문에 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1세기에 들어 위기극복의 키워드는 변화를 얼마나 잘 수용하느냐의 여부인 듯하다. 이는 리더와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경영전략이 무엇이냐는 의미가 없다. 이 세상은 변화한다는 것, 그 변화에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것만이 경영진리다.”
중국에서 인터넷사업으로 거부의 반열에 오른 잭 마(Jack Ma) 알리바바닷컴(www.alibaba.com) 회장의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명순영 /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