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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13. 09:28

국제 정세 이야기

중동(中東) 또 다시 전운(戰運)이 드리우다

최근 하락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가 러시아와 그루지야간 전쟁으로 다시 요동치고 있다. 그루지야는 카스피해산 원유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석유 수송의 요충지로 이번 사태가 국제 유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지만, 원유의 생산과 수출은 차질없이 꾸준히 진행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국제유가 상승의 더 큰 불씨는 역시 중동에 있다. 최근까지 지속되던 국제 유가 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핵 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는 세계 4위의 산유국 이란과 이를 저지하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경 대응이였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무력 충돌 가능성을 보이는 이란과 이스라엘, 미국간의 힘 겨루기 양상과 주변 국가들의 동향을 짚어 본다.


전 세계를 긴장시킨 이스라엘과 이란

이스라엘은 지난 6월 지중해상과 그리스 영공에서 비밀리에 자국의 주력전투기인 F-15와 F-16 100여 기를 동원한 ‘장거리 비행 훈련'을 실시했다. 뉴욕타임즈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익명의 펜타곤 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란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리허설'이라고 분석함에 따라 올해 안에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이란은 이에 대해 “(만일 공격 당하면)미사일로 대응할 것이며, 호르무즈(Hormuz)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지난 7월 9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근처에서 미사일 9기를 시험 발사했다.

이중 일부는 이란이 보유한 최신 미사일인 신형 샤하브-3(Shahab-3)으로 밝혀졌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샤하브-3의 사정거리는 2,000k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에는 이스라엘 전역뿐 아니라 거의 모든 중동 국가들이 포함된다.

특히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석유의 약 40%가 지나는 송유관이 위치한 곳으로 세계 2위의 산유국인 이란이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전 세계는 석유 수급 차질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과 미국, 이란 공격하기 힘들어

중동지역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이란과 이스라엘 및 미국간의 전쟁 가능성을 예측할 때 가장 분명한 사실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봉쇄를 비롯한 모든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이스라엘과 미국은 결국 ‘무력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스라엘과 미국 각각에는 전쟁을 불사하기 어려운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스라엘과 이란의 왕복 직선거리는 1,500km에 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주력전투기 F-15와 F-16의 최대 작전거리는 1,000km 남짓에 불과하다. 또한 최대 작전거리까지 비행한다 해도 이란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번은 중간급유를 받아야 하는데, 이란이 이 틈을 놓칠 리 없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란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해는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입장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중동지역에는 약 32개의 미군기지가 있고 이들 대부분이 이란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면 이들 모두가 이란의 로켓과 미사일 공격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면 핵시설뿐만 아니라 이란의 공격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이란 전역에 산재한 군사기지들도 함께 파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과 이미 벌인 두 번의 전쟁 여파를 효과적으로 수습하지 못해 궁지에 몰려 있는 부시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 같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대표의 협상 참여는 이란 공격 위한 포석인가?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OPEC 회원국 중 2위, 세계 4위의 규모다. 아무도 겨냥하지 않은 이란의 미사일 시험발사에 국제유가가 출렁이고 세계경제가 타격을 받는 이유다. 따라서 이란이 끝까지 핵을 고집한다면 그 결과는 전쟁이 될 것이고, 이 경우 피해자는 이란에 국한되지 않기에 국제사회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외교적 해결 방안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최근 미국은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기 전에는 이란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지난 7월 19일 제네바에서 열린 이란과의 협상에 대표를 파견했다. 이 협상에서 미국과 유럽연합 대표들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한다면 추가 통상·금융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8월 2일 “핵 개발 권리에 관해 한 치의 양보도 없다”고 선언했고, 전문가들은 결국 협상안을 거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은 일단 명확한 답변을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까지 3차에 걸친 경제봉쇄를 받고 있는 이란은 이 제안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으면, 추가로 4차 경제봉쇄를 당할 전망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어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나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복원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 점은 앞으로의 협상에 기대를 갖게 하는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을 신뢰하지 못하는 부시 대통령은 무력 대응을 선호하고 있다.

올해 안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의회와 행정부 내 반대파를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부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이 다시 한 번 화염에 쌓이게 될지 여부는 올해 안에 결판이 날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대안을 찾아라

한편 이란을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토후국 중 하나인 후자이라가 주목받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후자이라는 중동 원유를 육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인도양으로 빼낼 수 있는 유력한 거점이기 때문이다.

후자이라는 이미 원유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 공사를 진행 중이었으며 2010년 완공될 예정이다.

다른 걸프 산유국들도 역시 장기적인 원유 수송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데, 이들이 파이프라인을 통한 원유 수출에 합의할 경우 후자이라가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원유 저장 및 수출 항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쿠웨이트는 해외에 석유저장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더욱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OPEC 5대 산유국 중 하나인 쿠웨이트는 모든 원유와 정제석유제품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출하고 있는데, 중국과 베트남 등 정유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석유저장시설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쿠웨이트가 아시아 국가에 석유저장시설을 건설하면 쿠웨이트와 아시아 국가들간에 안정적인 석유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미 쿠웨이트와 200만 배럴 규모의 공동 석유저장 계약을 맺고 있는 우리나라도 더욱 안정적인 석유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다.  


- 남성준 / 주간동아·YTN 라디오 통신원.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중동학을 전공하고 있다.